▲인도박물관 구석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지구본
Dustin Burnett
인도 관람객들이 관심 있는 것은 오래되고 먼지 쌓인 유물 따위가 아니었다. 박물관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인도 각 지역의 전통의상'이라는 제목이 붙어진 커다란 인도 지도였다. 지도에는 인도의 각 지역에서 입는 전통의상이 그려져 있었다. 분홍, 주홍, 초록, 보라의 세상 모든 색을 화려하게 걸친 인도 관람객들은, 옹기종기 모여 신기하다는 듯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신기하다는 건지. 내가 보기엔 관람객들이 걸친 의상이나, 지도에 그려진 전통 의상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깨진 유리병 안에 자라난 화초 같은 곳, 콜카타콜카타는 마치, 여러 색의 단단한 지층으로 되어있는 곳 같다. 작은 어촌이었던 콜카타. 그 위에 영국 식민지 시절의 역사와 문화가 덧칠해지고, 시간이 지나 화석처럼 굳어진 그 과거 위에 다시 지금의 인도가 생생한 색을 내며 존재하고 있다. 영국이 지은 인도박물관 안에는, 인도인들이 영국 식민지 이전부터 입어왔던 전통의상을 그려놓은 지도가 전시되어 있고, 지금도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이 그 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하얀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닌 유럽식 건물의 무너진 벽 틈 사이로 나무 하나가 팔을 뻗어 자라나고 있다. 서로 섞이지는 않지만, 과거와 현재와 붉은 것과 노란 것이 각자의 뚜렷한 색을 내며 공존하고 있는 곳. 동화되지는 않지만, 서로의 위에, 서로의 옆에 함께 남아 공존하는, 깨진 유리병 안에서 자라난 화초와 같은 것이, 콜카타라는 도시의 풍경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과거가 한 겹, 거리의 먼지가 한 겹, 정신 없는 경적 소리가 한 겹, 맹렬한 사람들의 표정이 한 겹. 겹겹의 표정이 덧칠해진 콜카타 거리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했다. 내 안에는, 고집을 부리고 쉽게 후회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어려 있다. 타인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엄마의 모습도 어려 있다.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만은 없는, 싫은 건 절대 좋은 티를 내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도 있고, 엉뚱한 꿈을 꾸는 이상주의적인 아빠의 모습도 있다. 그 위에 더스틴과의 관계에서 피어난 새로운 내가 자라 있다. 그 안에는 온건한 모습도 있고, 화를 내는 모습도 있고, 뒤틀리고 못난 모습도 담겨 있다.
콜카타는 날 것의 도시다. 지나온 과거를, 더러운 거리를, 지독한 가난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곳의 사람들은 엉클어진 과거를 그런 채로 내버려 두고, 그 위에서 오늘 나름의 인생을, 깨어 있는 아침을 산다.
완벽하지 않은, 깨끗하지만은 않은 나지만, 많은 게 얼룩져 있는 나의 민낯을 숨기지 않을 줄 알아야, 진짜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그 위에 다시 쌓일 새로운 색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