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카타의 거리. 더스틴이 그린 그림.
Dustin Burnett
지난해, 9개월 동안 남편(미국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일본 공포영화가 무서운 까닭은 그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잔인한 일들이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의 인도는 우리에게 일본 공포영화와 같은 곳이었다. 끔찍하리만큼 오염이 심한 갠지스 강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맨발로 걸어 다니는 구루들, 찐득거리는 카레를 손으로 먹는 사람들, 21세기 현재에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소를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찾고 책을 읽어봐도 인도라는 나라는 좀처럼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았다.
어떤 도시나 국가를 책으로 읽고 정의한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나라라고 하기엔 세계 9위라는 경제 순위가 있고, 발달이 더딘 나라라고 하기엔 간디나 타고르, 부처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가 태어난 곳이다. 알 수가 없어서 두려운 인도 여행을 앞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꺼운 인도 여행서 두 권과 인터넷의 여행 리뷰를 열심히 정독하는 것뿐이었다.
인도 여행에 대해서라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여행담이 무성했다. 인터넷에는 배낭을 통째로 도난당했다든가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사기당했다든가 하는 등의 끔찍한 이야기만 흘러넘쳤다. 인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모두 큰 전쟁이라도 먼저 겪고 온 사람처럼 한 마디씩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 달 동안 인도여행한 지인의 조언, 더 이상 듣지 않았다여자는 반드시 긴 바지, 긴 소매를 입어야 하며, 인도 남자가 친근하게 굴면 100% 수작이며 성희롱이니 매몰차게 거절해야 한다(이런 충고에는 으레 '쉽게 넘어가는 한국 여자들을 보면 수치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는 코멘트가 따라 붙는다). 기차를 타면 타자마자 침대 아래에 배낭을 넣고 쇠사슬로 잠가야 하며 값나가는 물건이 있다면 절대로 인도인들 앞에서 꺼내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 물을 조심해야 하는데, 반드시 페트병에 들어있는 물을 사 먹어야 하며 병에 구멍을 뚫어 수돗물을 채워 파는 경우도 있으니 유념해라.
인도라는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행자들을 등쳐먹기 위해 예의주시하고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인도에 3, 4개월 정도는 있을 것 같다고 하자 인도에 한 달을 다녀온 적이 있는 지인은 기겁했다.
"3개월! 한 달이면 충분해. 좋은 경험이긴 했는데 정말 끔찍했어. 인도라면 다시는 안 가. 인도 남자들은 온몸을 가리고 다니는 인도 여자들에 익숙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여자가 거리에 돌아다니면 눈을 부릅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쳐다봐. 다들 팔이라도 만져보려고 손을 뻗어댄다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나는 어린 애들이 배가 고파서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런 광경은 너무 슬퍼서 못 봐. 그래서 나는 보름 동안 택시를 고용해서 주요 관광지만 돌아다녔어. 그 가이드 참 좋았는데 소개해줄까?"
이것을 끝으로, 나는 인도 여행에 대한 조언 듣기를 그만뒀다. 특히 인도 사람들의 실상을 보기가 불편해서 택시를 타고 주요 관광지만 찍고 도는 관광객의 말이라고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