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7월 29일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경찰 분석관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지난해 12월 16일 새벽 폐쇄회로(CCTV) 영상을 추가로 공개하고 있다.
남소연
2012년 12월 16일 오전 9시, 분석관들끼리 경찰 수사 발표문 가안 작성에 돌입했다. 문구 작성에는 "최대한 명확하면서도 모호해야 한다"는 모순된 주문이 이어졌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주로 활동한 4개 누리집을 확인했음에도 분석관은 "수사발표 때, 아예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리했다. "오늘의 유머에 이 사람(국정원 여직원)이 자주 들락날락거렸다고 발표하는 순간, 국정원에서 오유를 사찰하고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발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였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분석관들은 "찾아낸 닉네임이나 그걸 통해 검색된 글들은 봤는데, 삭제 정황이 있다" "자료 삭제가 시도되었다고 판단해야 한다"는 등의 얘기를 주고 받았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정황"이라는 한 분석관의 말에 다른 분석관은 "댓글을 달았거나 글을 삭제한 게 중점 사안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일단 우리가 알아낸 사실은 위쪽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황'을 강조한 분석관은 "삭제를 얘기하면 '삭제했네'로 된다, '같습니다' 그런 건 안 된다"고 일축했다.
결국 "발표자가 '삭제'를 얘기한다는 거 자체가 예민하다, 지금은 아무 언급을 안 하고 이게 진짜로 덮어져서… 어떤 것에 의해 삭제 됐든 얘가(국정원 여직원) 진짜로 삭제했든 그건 아직까지는 잘 모르는 것"이라며 발을 빼게 된다. 이에 'delete(삭제) 기록 발견'이라고 정리하려 했으나 16일 밤에 발표된 중간 수사결과에는 이 내용마저 포함되지 않았다.
중간수사발표가 6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분석관들의 입장은 명확해진다. 한 분석관은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그렇게 써가려 그러거든요"라고 말했다.
오후 8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분석관들은 "12시가 넘어가면 월요일이 된다" "주말에 하는 거랑 월요일에 하는 거랑은… 수요일(19일) 대선이면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다"며 발표를 서두르는 데 대한 '이유'를 댔다.
경찰 발표를 1시간 30여 분 앞둔 오후 9시 40분 한 분석관은 "혹시 이게 다 문제될지 모르잖아, 떼고 지우라는 거 아냐?"라고 말했고, 또 다른 분석관도 "했던 것들을 다 갈아버리라"고 말한다. 한 분석관이 다시 물었다.
"싹 다?"100여 쪽에 달한 분석관들의 분석 출력물들은 이날 밤 모두 폐기됐다.
결국, 127시간 동안 분석한 내용은 사라진 채 16일 저녁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오후 11시, 경찰은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뒷 이야기] 증거물 하나하나에 환호했던 분석관들, 그 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