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폴만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소장은 2일 국회에서 '독일사회민주주의 현황과 개혁논의'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사민당의 신자유주의식 개혁은 경제성장을 낳았지만 양극화 등 폐해도 불러왔고 무엇보다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실책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1960~1970년대 유럽에는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란 꽃이 활짝 피었다. 많은 나라들은 복지재정을 늘렸고, 모두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80년대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사민주의' 꽃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밭에 뿌리를 내리려고도 애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떠나갔다.
"사회민주당(사민당)은 지금도 여전히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독일 사민당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의 크리스토퍼 폴만 한국사무소 소장이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에서 말했다. 독일 사민당은 올해로 150년이다. 금세 정당이 생겼다 사라지는 한국과 비교해 볼 때 그 뿌리가 튼튼해 보이는데도 폴만 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사민당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제3의 길'을 꼽았다. 1998년 사민당은 녹색당과 맺은 '적록연정'을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한다. 하지만 통일 후 동독에 매년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어야 했고, 실업문제는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은 탓에 사민당은 발걸음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고용 유연화, 시장논리 강화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독일판 '제3의 길'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신중도(Neue Mitte) 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이 노선은 "한편으론 사민주의의 현대화, 다른 면에선 신자유주의의 여러 가치들,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국제경쟁에 뛰어드는 일을 사민주의가 받아들인 셈"으로 볼 수 있다. 폴먼 소장은 "그 첫해 경제 성장률이 높아졌지만, 양극화가 심해졌다"며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식 신자유주의 '제3의 길'은 양극화를 남기고...복지 혜택을 줄이고, 해고 요건은 약해진 반면 기업의 세금을 줄이는 등 경제 성장에 방점을 찍은 사민당의 정책은 많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다. 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사민주의의 중요한 축이었다. 폴먼 소장은 "사민주의 안에는 자유, 정의, 연대라는 세 가지 중요한 가치가 있다"며 "세 가치가 맞물린, '약자에게 도움을 주고, 강자가 모든 것을 취하지 않고 이익을 공유해야 사회가 진보한다'는 생각이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묶어줬다"고 했다.
하지만 자유와 정의, 연대를 똑같이 중시하기보다 효율을 강조한 '제3의 길'은 사민당과 노동조합의 연결고리를 약하게 만들었다. 폴먼 소장은 "이 부분은 사민당 안에서도 전략적 실패로 인정한다"고 했다. 결국 2003~2004년 들어 지지자들의 반발과 실망이 눈에 띄게 드러났고, 적록연정은 2006년 보수성향인 기독교민주당(기민당)-자유민주당(자민당) 연합에 정권을 넘겨야 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민당은 다시 꿈틀대고 있다. 폴먼 소장은 "당시 사민당은 '어떻게 하면 경제를 회복할 수 있을까'부터 고민을 시작했고, 그 결과 우리의 산업 자원을 좀 더 생태적으로 활용하고 또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의 부채 위기를 잘 극복하고, 유럽연합(EU) 회원국 어디서든 사회안전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사민당의 과제다.
하지만 어떤 정책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좋은 사회(Good society) 담론'이다. 폴먼 소장은 "사민당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를 이룰 것인가'를 중시한다"며 "좋은 사회담론은 '21세기형 좋은 사회는 구성원들이 무엇을 누리는 곳일까?'란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얘기했다.
"모두가 자기 삶에서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건 한 나라 차원에서 이뤄질 수 없어요. EU,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자원이 한정돼있기 때문이죠. 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쓸지를 국제적으로 고민해야 모든 나라와 시민이 함께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다음은 폴먼 소장이 청중들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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