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의 새벽 탁발 행렬.
홍성식
다시 루앙프라방의 새벽 거리로 돌아오자.
사전에 얻어들은 정보를 통해 어린 스님들은 탁발 품목 중 찰밥이나 돈보다는 사탕, 초콜릿, 과자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새벽에 시주를 받아 절에서 그걸 나눠 먹을 때가 되면 밥보단 과자에 손이 먼저 간단다. 왜 그렇지 않겠나. 승복만 벗으면 이제 겨우 열 살, 열한 살 꼬마들인데.
탁발 참여 첫날. 거리로 나가 과자를 파는 상인에게 물었다. "얼마나 많은 동승들이 이 길로 지나가나요?"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대신 답했다. "아마 120~130명쯤 될 거예요." 50개 들이 중국산 과자가 2달러(2300원)다. 3박스를 샀다. 그러면 150개. 하나씩 다 나눠줄 수 있는 숫자다.
이윽고 희부옇게 밝아오는 여명. 저 멀리 조용한 루앙프라방 새벽 거리로 탁발승의 행렬이 나타났다. 각각의 사찰에서 주지 격인 늙은 스님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서열 혹은, 나이에 따라 줄 지어 행렬을 이루는 것으로 추측됐다.
한 40여 분을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는 동승들의 행렬. 탁발이 다 끝나니 날이 온전히 밝았다. 과자가 30개쯤 남았다. 그건 내 옆에 있던 일곱 살 꼬마소녀의 종이박스에 넣어줬다.
들어보니, 탁발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절대다수는 무언가를 동승들에게 나눠주는데 몇몇 아이들은 오히려 종이박스를 든 채 동승들이 주는 걸 받고 있는 것이다. "왜 저러는 것이냐"고 물으니, "가난한 집 아이들"이란다. 가난한 동승이 더 가난한 또래 친구들 도와주는 눈물겨운 풍경.
그 일곱 살 소녀. 바나나와 찰밥, 과자 따위가 담긴 종이박스를 옆에 놓고, 손으로 뭉쳐 식은 밥을 아주 조금 먹는다. 과자를 파는 노점상에 의하면 소녀가 얻은 음식은 가족들의 하루 식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분명 아버지나 엄마가 아프겠지. 어지간해선 슬퍼하지 않는 내 코끝이 찡해져왔다.
시인 황지우에 의하면 세상에 '슬픔처럼 쌍스러운 건 없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착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 루앙프라방이 나를 슬픔으로 내몰았다. 그 슬픔 속에서 내가 생각한 가난 아닌 가난이 참혹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하니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함께 밥을 나누는 존재인 식구(食口)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식구가 있어도 식구를 식구처럼 살갑게 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게 그저 나 하나만의 섣부른 예단일까? 아닐 것이다. 라오스 여행이 남은 내 삶에서 스승으로 역할할 수 있다면, 이 깨달음은 그 역할의 배경화면이 돼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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