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들어진 코토르의 석조 고성. 웅장함이 뒷편 돌산과 근사한 하모니를 이룬다.
류태규 제공
어쨌거나 갖은 고생 끝에 자정 무렵 아드리아해와 접한 몬테네그로의 해변도시 코토르에 도착했다. 법이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착해 보이는 모녀가 늦은 밤 국제버스터미널에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 딸 모두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그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조그만 팸플릿을 통해 가격과 방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1박 10유로. 내가 그 모녀를 따라가 그들의 아파트 방 한 칸을 숙소로 삼은 건 딸의 다리가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 아니었다, 라고 말하면… 다들 거짓말이라고 하겠지. 전해들은 두 사람 삶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책 한 권 분량이지만, 그건 잠시 후에.
거대한 고성, 멋들어진 크루즈선박 그리고, 가슴 아픈 폐허코토르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딸이 끓인 터키식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챙겨 먹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검은 산'이라는 나라 이름을 증명하듯 이끼 낀 거대한 성벽을 담고 있는 가파른 돌산이 절경이다. 해변엔 고급 요트가 줄지어 정박돼있고, 거대한 크루즈선박도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아드리아의 바닷빛이야 더 말해 무엇 할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조금만 시내 외곽으로 나오자 전혀 다른 풍광이 나를 맞이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손님이 들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는지 가늠키 힘든 텅 빈 호텔과 관리가 안 된 수영장, 깨어진 유리창 뒤로 푸른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폐건물, 거기에 무슨 이유에선지 조금은 주눅이 든 표정으로 해변을 서성이는 동네 주민들.
몬테네그로의 요약된 역사는 포털사이트 검색기능을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 여기서 그걸 오래 인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직접 그 도시를 경험한 사람의 느낌이 추후 여행객들에게 더 유용한 정보로 다가오지 않을까.
최근 독립을 이룰 때까지 너무나 긴 시간을 불가리아와 이탈리아, 오스만제국의 식민지로 지냈던 몬테네그로의 역사. 거기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극악한 경제적 궁핍 때문일까? 눈이 부신 바다와 입이 떡 벌어지는 웅장한 석산 풍경 아래 그림처럼 펼쳐진 도시임에도 코토르는 어딘지 모르게 '폐허'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였을 것이다. 코토르에서 만난 석양은 터무니없이 낭만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차피 '낭만'이란 단어 속에는 '폐허'와 '퇴폐'의 이미지가 숨겨져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