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불산누출규탄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삼성노조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부지회장 모습
다산인권센터
여튼 이렇게 장황하게 갑을타령을 늘어놓고 있는 이유의 요지는 미스김씨도 울고 갈 슈퍼 갑, 삼성과 급수로 따지자면 그만큼 등급이 업그레이드 될 것이 분명한 슈퍼 을들, 삼성노동자들에게 '직장의 신되는 법'이라는 간단한 레시피를 공개하기 위함이다. 간단해도 너무 간단해서 공개하기도 민망한, 그것은 '노동조합 가입하기'다. 제발 쫌. 공포를 이기고 제발 쫌. 노동조합 가입하기. 노동조합 무서워하지 말기. 노동조합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기.
주변에 삼성 노동자들이 많아서 삼성의 속내 이야기를 삼성 다닌 것처럼 알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배웠던 싱글이라는 그들 내부 통신망에는 '노동'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는 아예 뜨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왜 그거 있지 않나? 갑자기 컴퓨터를 보고 있다가 노동, 노동조합을 쳤더니 삐요 삐요 소리가 나고, 화면이 블랙아웃되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상상이 되는 것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여튼 우습다고 생각했다.
유치한 작태를 이리 뻔뻔하게 하고 있는데, 그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지? 동급으로 유치해, 아니 비겁해, 라고 생각했더랬다. 먹고살기 위해서 맺은 동맹치고는 좀 많이 치졸해. 노동, 노동조합이라고 발설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노조가 필요 없을, 복지를 주고 서운치 않게 대접하고. 이것도 어느 영화에서 본 대사같지 않나? "우리 아들하고 헤어지면 섭섭지 않게 넣어줄게"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 모든 우스운 상황을 용인한, 삼성의 문화는 적어도 촌빨날리는 막장드라마의 돈봉투 받고 치사하게 떠난 옛애인급에 불과했다는 말씀이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토록 괴로워야할까? SDI의 송수근, 김갑수, 삼성전자의 박종태, 삼성에버랜드의 조장희. 일단 기억나는 이름만. 맞다, 그들이 노린 것은 여기까지다. 노동조합 만들면 괴롭힐 테야. 말 안듣는 놈들은 조직 내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할 테야. 그걸 너희들 모두 봐야해. 이렇게 되는 거야. 이렇게 되면 어때? 좋겠어? 그래서 외면하게 하고, 그래서 안되는 걸로 일단 마음의 깊은 심연에 깃발을 꽂아 놓았다.
'무노조'라는 헌법을 유린하는 범죄적 단어를 만천하에 떠들고, 창업주의 유산이라고 꽤 위대한 호들갑을 떨었다. 한국사회 전체를 위임받지 않은 자기들의 통치체제로 어지럽히면서도 어디서 낯짝도 두껍게. 삼성의 극악무도함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새로울 하나도 없는 일이기에 여기까지. 그래서 하여튼 다시금 요지를 정리하자면, 중요한 것은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다.
삼성에 노조 있다... 진짜로? 정말로!삼성에 노조 있다. 붕어빵엔 붕어 없고, 인권위엔 인권 없지만, 삼성에는 노조 있다. 그것도 금속노조 소속의 번듯한 노조. 다 해고 됐겠지? 아니다. 괴롭겠지? 아니다. 심지어 삼성지회 조장희 부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을 괴롭히는 법률소송? 번번히 이기고 있다. 백전백승의 승률. 진짜로? 정말로!
드디어 삼성 싱글에 사측과 금속노조와의 교섭공문이 뜨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올투게더 아, 고소해. 아, 통쾌해. 물론 과반수 노조라고 만들어진, 소위 어용노조와 교섭하겠다고 한다지만 싱글에서 실종된 단어노동과 노동조합이 금속조끼를 입고 등장한 것이다. 이, 아니 감격스럽지 않을 쏘냐. 노조는 역병이라는 소문을 뚫고 등장한 그들이 알고 보니, 어쩌면 그렇게 위풍도 당당한 멋진 외모일까. 꽃가라 날리는 화면을 배경으로 뭐 이런, 화려한 등장이 어디 있을까.
삼성 노동자들. 이 대목에서 자신감을 회복하자. 우리에겐 원래 노조와 같은 단어로 유인되는 자신감은 없다? 그럴 리가. 전교조도 모든 협박과 사회적 냉대조차 깨고 노동자의 이름을 얻었다. 모든 정권이 일심단결하여 그토록 괴롭혀도 노동자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고 교단에 서고 있다. 위기는 기회와 같이 온다. 어느 때보다 민주노조가 어렵다는 이 시대에 삼성 노동자들이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삼성으로 대변되는 무질서와 혼란, 강한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못돼먹은 불문율을 깨기 위해서, 이건희 체제로 훼손된 삼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삼성에서 노조가 사라지지 않고 성장하며 그 힘으로 삼성의 비민주적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한국사회가 민주주의의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조차 있지 않을까.
<직장의 신>에서 미스김씨는 정규직 제안을 하는 부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왜요? 저는 노예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만." 계약직이어서, 비정규직이어서, 정규직이어서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되고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노예가 된다. 그래서 회사에서 노예가 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노동조합이다. 어렵지 않은, 을들의 '직장의 신'되기. 초간단 레시피는 여기까지다. 삼성노동자들을 위한 생존버라이어티 팁이다.
추신. 5월 10일 금요일 삼성에서 노조를 지키는 평범한 남자들이 주점을 연다. 이들이 기어코 결국 삼성을 살릴 구원투수라는 것. 와서 봐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