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존케리 국무장관이 4월 12일에 서울을 방문 한 이후 서서히 대화를 위한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악수하는 장면.
청와대
3월 초부터 시작한 한미독수리훈련이 4월 30일에 마무리되었다. 미국은 존케리 국무장관이 4월 12일에 서울을 방문한 이후 서서히 대화를 위한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이어 중국을 방문한 존 케리는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난 뒤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면 전진 배치된 미사일 방어망(MD)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MD체제를 추구하는 공화방의 반발이 빗발치자 이에 대해 중국과 합의한 것은 아니라고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과 협상에서 중국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이렇게 방치할 경우 2016년경이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미국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 그래서 미국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능력을 제거할 협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의회나 여론은 북한과 협상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므로 미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설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다.
북한이 말 폭탄 공세를 멈춘 이유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뽑아든 카드가 중국 역할론이다. 미국은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문제에서는 중국의 중재가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북한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중국정부는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정부는 이 같은 고차방정식을 풀어갈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의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지난 4월 18일에 ▲모든 도발 중지 및 전면 사죄 ▲핵전쟁 연습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확약 ▲한국과 주변 지역에서의 전쟁수단 전면 철수 등이 대화의 조건이라고 밝혔을 때 이를 긍적적으로 해석하기까지 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런 북한의 발언을 존 케리 국무장관은 북한이 협상에 대해 처음 언급했다는 것이고, 이는 협상을 위한 첫 번째 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이와 같은 처신은 4월 중순으로 예상했던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를 유예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4월 중순 이후 북한은 지난 1월 말부터 지속해왔던 말 폭탄 공세를 멈췄다.
미국 국무부의 조셉 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은 지난 4월 25일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 청문회에서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없어지면 괌 미군기지에 배치한 MD 미사일 방어망을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4월 13일 베이징에서 한 존케리 국무장관의 발언을 재확인해준 것이다. 미국정부는 MD 재조정 같은 국가전략의 수정을 중국에 대한 머리 숙이기라는 자존심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이익의 관점에서 이익을 조정하는 협상전술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능수능란하게 고차방정식을 풀어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중국에도 고차방정식이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규범을 어기는 북한은 언제까지 편들 수만 없다. 경제력이 성장한 만큼 국제사회에서 책임국가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을 포기할 경우에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조중 국경지역이 불안해지고 한미 군사동맹이 강화되는 것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전쟁 반대, 북한 불안정 반대, 북한 핵 반대가 중국의 본질적인 이익이 된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서 중국은 앞에서는 북한을 나무라고 뒤에서는 북한을 달래는 다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미국과 물밑 협상을 통해서 미국이 북한을 대화로 나오게 하는 조치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북미 사이에서 중재외교를 통해서 중국 앞에 놓인 고차방정식을 풀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위기가 고조되자 출범 직후부터 한동안 유지해왔던 차분한 기조에서 이탈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에 맞서 '중대조치'를 내걸면서 북한에 맞선 것이다. 이는 한반도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의 부족이고, 한국이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의 해법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북한에 밀릴 수 없다는 강박관념의 표현일 뿐이다. 남북관계에서 이런 강박관념이 바로 대결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원천이다.
화끈하게 사용한 한국판 벼랑 끝 전술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대북회담을 제안하면서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중대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한 것은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와 부처 간 정책 조정능력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비판했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의 한국판이다. 북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벼랑 끝 전술을 한국이 화끈하게 사용한 것이다.
미국 언론들도 북한의 강경조치가 수그러들 때 한국정부가 개성공단 인력철수조치를 취했다고 바라보았다. 특히 중국의 6자회담 대표인 우다웨이가 미국을 방문하여 북미대화의 조건 마련을 위한 협상을 하던 시점이었다. 또 윤병세 외무장관이 4월 24일 중국을 방문하여 북한문제에 대한 한중 협의를 하던 시점이었다. 따라서 4월 25일 정부의 회담제안과 4월 26일 인원철수조치는 국제정세의 흐름과 대북정책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통합적인 정책조정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1970년 이전의 남북관계는 '대화없는 대결의 시대'였다. 1970년을 거치면서 '대화 있는 대결'를 거쳐서 2000년에 들어와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제 남북관계는 1970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냉전시기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은 북한과 대결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을 겁쟁이나 비겁한 행동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대화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대화 없는 대결의 시대'와 '대화 있는 대결의 시대'1968년과 1969년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 이후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였다. 1968년에는 북한의 124부대 소속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가 벌어졌다. 이틀 뒤인 1월 23에는 북한해군함정이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불르호를 나포했다. 또 그 해 10월에는 130여 명의 무장 게릴라들이 울진 삼척을 침투했다. 1969년 4월에는 북한군이 미군 EC 121 정찰기 격추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 들어와서 박정희 대통령은 통일에 대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하여 돌연 평화통일제안을 한다. 8·15 평화통일구상에는 "1995년까지 남북한이 서로 반공이니 반동이니 하는 소리하지 말고 서로 평화를 지키면서…"라는 구절이 있다. 마치 1990년대에 재야인사들과 학생들이 1995년 통일원년을 내세우면서 통일운동을 활성화시켰을 때를 연상하게 하는 발언이다.
당시 청와대의 입장은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북한에게 전쟁을 하지 말고 어느 체제가 더 잘 살게 할 수 있는가를 경쟁하자고 던져 주는 것이 전쟁억제를 위해 몇십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고등전략"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8·15 평화통일구상 선언의 요지는 '긴장상태의 완화를 거쳐 평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통일 이전에 긴장완화, 전쟁방지, 평화정착 등의 중간단계 설정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으로서 이후 역대 한국정부 통일정책의 골격이 되었다.
이후 박정희는 본격적으로 대북협상을 준비하였다. 대북협상은 남북한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이에 따라서 1971년에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안하였다. 북한이 수락하여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북대화 재개되었다.
남북 적십자회담을 거쳐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선 인도주의 회담 → 후 남북당국자 회담'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대화의 패턴은 이미 박정희 시절 그 기초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자존심 경쟁이 아닌 '고등전략'을 사용하기 위해 남북대화를 시작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박정희가 구상한 대북 고등전략은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꽃을 피웠다. 박근혜 시대에는 오히려 고등전략이 자존심 경쟁이라는 하등전략으로 대체되고 있다.
물론 박정희의 고등전략이란 1969년 '아시아는 아시아의 손'으로 라는 닉슨 독트린과 이후 미중 수교의 국제정세에 기인했던 것이다. 박정희가 대북정책을 독재정권 강화와 민주화세력 탄압으로 악용하였기 때문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국제정세의 맥락을 읽지 못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는 분명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