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오전 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는 김재철 MBC사장.
권우성
유능한 인력의 추방과 공익적 프로그램의 축출,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판적 저널리즘의 붕괴라는 행태로 시청자들은 MBC 비정상화를 구체적으로 체험해 왔다. MBC(뉴스)의 존재감 상실, 공영방송 MBC의 정당성 위기로 일반 시민들에게 생생하게 다가가 있다. 만약 이게 김재철 일파가 진정으로 의도한 것이었다면, 그들은 바로 그 목표를 완벽하게 성취한 셈이다. 공영방송 MBC의 몰락. MBC 공익성의 무효화 조치를 통한 공영방송 체제의 해체. MBC의 비정상성은 이 중대한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또 지금도 진행 중인 중대 사태다.
그렇기에, MBC 정상화는 보통 일이 아니다. 사장을 날리는 일이나 그 후임을 서둘러 뽑는 일 혹은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지배구조 개선 논의'로 해결될 수 없는, 중요하고 긴급하면서도 험난한 과제다. MBC를 공영방송의 정상적인 체질로 되돌리는 과업, MBC의 공익적 서비스를 통해 위험에 처한 공영방송 체제 자체까지도 함께 보수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MBC 정상화의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 귀중하고 지난한 사업은, 최소한 현재의 시점에서, 1%도 채 구현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물론 김재철이라는 인물의 추방은 정말로 속 시원한 일이었다. MBC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시민사회와 시청자 모두에게 통쾌하고 고소한 사건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설혹 방문진이라는 정권 친화적 집단에 의해 정치 공학적 차원에서 뒤늦게 이루어진 결정인 측면이 크지만, 그 의미는 결코 낮춰 볼 수 없다. 미래의 진행이 바로 그 포인트에서, 그것을 계기로 해서, 전혀 다르게 이루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김재철은 이렇듯 정상화의 필요조건임이 틀림없지만, 정상화의 충분조건은 전혀 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이자.
차라리 이제부터가 문제다. 뉴라이트 이명박과 구별되는 보수우익 정권이 집권한 상태다. 효능 다한 퇴물 사장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충족으로 대체하려는 세력의 공모가 지금 당장 진행 중이다. 김재철 퇴출을, 정상화 개시의 입구가 아닌 정상화 논의 봉합의 출구로 가져가려는 기획. 김재철보다 좀 나을 성싶은 카드를 던지고, 해직 언론인 몇 명을 복직시키는 타협안을 제시하고 그래서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며, 남은 것은 국회 특위에서 풀자면서, 그렇게 MBC를 저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정상화'하는 수순이 예상된다.
이렇게 나올 저들의 '정상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 국면에서 더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그 정도의 '정상화'를 수용하는 실리 노선이 맞고 불가피한가? 아니면, 저들이 원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제대로 MBC를 정상화하고 공영방송 MBC를 되찾기 위해 훨씬 지난한 싸움을, 김재철 퇴출이라는 이 귀중한 기회를 통해, 시작해야 할 것인가? 김재철 퇴출로서 겨우 열린 정상화의 가능성을, 어떤 내용으로, 어떠한 전략·전술을 통해 실현시켜낼지, 시민사회와 노조, 그리고 시청자 모두가 당장 자문에 나서야 한다. 공통의 해답 찾기.
개인적인 의견이다. 김재철 없는 MBC, 똑같이 무능한 앵커출신 사장 때문에 속 썩인 몇 해 전 과거를 정상화된 MBC로 결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영방송으로 정상화된 MBC라는 정상화의 최대 목표, 먼 미래를 고집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정상화란 폭력에 의해 훼손된 과거의 긍정적 면모를 원상 복구하고 미래의 필요한 요소들을 적극 구상하는, 지속적 노력이자 활동적 과정에 다름 아닌 것. 구체적인 내용과 확실한 목표를 갖고, MBC 정상화 운동을 지금 당장 개시해, 지속하는 실천 외에 대안이 없다.
정상화의 답을 권력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정권과의 타협을 통해 얻어낼 정상화가 아니다. 몰락 지경인 MBC의 공영성 복구와 프로그램·편성의 공익성·자율성 회복이 정권에 의해 가능할 리 만무하다. 비판적 저널리즘의 실천을 통해 시청자의 신뢰를 얻고, <피디수첩>의 정상 복원은 물론이고 위축된 교양·다큐의 편성 확대를 통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정당성을 되찾는 일. 이를 위해 해고된 피디와 배제된 기자들을 원직 복귀시켜 대중의 지지를 득하는 일. 권력과의 타협을 통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강제 통폐합 위기에 놓은 지역 MBC를 보존하는 일도.
공영방송 MBC가 끝장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