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최일구 앵커와 김수진 기자가 해직기자의 복직을 외치며 2012년 6월 4일 1인 시위를 벌였다.
권우성
구성원들에 대한 인사전횡의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70일 파업을 이끌었던 노조 집행부의 경우는 별론으로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박성호, 박성재 두 전·현직 기자회장 그리고 PD수첩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승호 PD, X-파일 보도로 MBC의 성가를 높였던 이상호 기자의 해고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적합한 해고 사유를 찾을 수가 없다.
또한 700명을 넘는 파업 참가자들 중 일부를 특별한 이유없이 제작과 무관한 부서에 배치하고 그중 일부는 이른바 '신천교육대'에 보내 방송과 무관한 교육을 받게 하고 있는 점, 또한 일반인의 상식으로 판단하더라도 납득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비상식적 인사전횡의 결과는 차차 현실의 참담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말 뉴스의 인기앵커였던 최일구 기자 등이 모멸감과 자괴감에 사표를 던졌다. 20~30년의 세월 MBC의 구성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고참 사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버린지 오래고, 그저 시간이 가서 정년퇴직하기만을 기다린다"며 자조섞인 발언을 서슴지 않기에 이르렀다.
방송은 사람이 만든다. 그러기에 좋은 프로그램의 제작은 제작 일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 노력에 의해 가능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MBC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다.
고위층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 아이템 선정에 제약을 받게 되고, 시청율이라는 일률적 잣대에 의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가 판단되어지는 한, 그리고 과거 MBC의 영광을 기억하는 선배 사원들은 의욕을 잃고 MBC를 떠날 궁리만 하고, 젊은 기자와 PD들은 회사내 권력자들의 눈치만 살피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MBC에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2009년 8기 이사회 구성부터 예견되거나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이사회는 방문진의 권한을 넘어 과거에 방송된 개별 프로그램의 내용까지 문제삼기 일쑤였다. 그러한 프로그램을 방치한(?) 경영진의 무능을 무차별 비난했으며, 방송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외압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들은 경영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으로 치부되었다.
그 결과 당시 경영진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이후 김사장 취임 후 3년, 2009년 당시 방문진 이사회에서의 주장은 김사장 해임 후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MBC의 절대권력을 만들어 냈다. 김사장의 퇴진이 MBC 문제의 해결일 수는 없다. 그러기에 얼떨결에 닥친 현재의 상황이 즐겁지만은 않다. 짙게 드리워진 MBC의 절대권력 김재철의 그늘이 상황을 더욱 그렇게 만든다.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해고자들은 원직에 복직되어야 하고, 제작 일선에서 쫓겨난 유능한 인력들은 현업에 복귀해야 한다. 그리고 MBC 경쟁력의 강력한 토대가 되었던 제작 자율성 보장의 제도적 틀이 복구되면 된다. 그러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MBC의 부활이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MBC에 드리워진 김재철의 그늘이 여전히 짙고, 그늘은 경험한 자들은 빛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1988년에 출범한 방문진 체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에 유효한 제도로 인식됐다. 방문진은 MBC의 경영진을 임명하는 역할에 그친다. 방문진이 임명한 경영진은 일정 인사권과 경영권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되 제도로 보장된 제작 및 편성자율권의 틀을 유지시켜 준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공영방송 MBC의 경쟁력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선순환 구조는 깨진 지 오래다.
선순환 구조의 부활은 출발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방문진으로 상징되는 공영방송 MBC에 대한 거버넌스 구조는 대폭 개편되어야 한다.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관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현재의 구조는 이미 그 유효성을 상실하였다. 어느 정치세력도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공영방송의 운명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이것이 지난 3년여에 걸친 '김재철 파동'이 던져준 교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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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김재철' 앓은 MBC, 어떻게 건강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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