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 마루의 매천 황현 선생 초상화와 절명시
김종길
매천 선생은 황희 정승의 15대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시문에 능하여 천재로 불렸다. 29세(고종 25, 1883년)에 특설보거과에 급제, 34세(1888년)에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였으나 조정의 부패를 안타까이 여겨 낙향했다. 세속의 미련을 버린 매천은 서재 구안실을 마련하고 이후 구례로 옮겨가 호양학교를 설립하는 등 후진양성과 학문에 몰두했다.
1910년 8월, 나라를 잃자 망국의 한을 닮은 <절명시> 4수와 자제들에게 <유자제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했다. 몇 번이나 죽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대목에선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묻어나고 "글을 아는 이, 사람 구실 참으로 어렵다"는 대목에 이르면 절로 숙연해진다. 생의 끝이 '윤곡'처럼 자결할 뿐, '진동'처럼 의병을 일으키지 못하는 자신이 못내 부끄럽다는 지조 높은 선비의 자책에선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죽을 마음이 없다. 그러나 나라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러 왔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을 당하여 한 사람도 책임지고 죽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아니한가" 하는 말로 장렬한 삶을 마친 우국지사, 문·사·철을 한 몸에 갖추고 현실을 직시하고 풍자한 문장가, 당대를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록한 역사가, 나라의 운명을 따라 당당하게 목숨을 던진 지조 높은 선비.
그의 고결한 삶은 지식인의 본분이 무엇이며, 지식인의 위엄은 어떠해야 하며, 지식인은 무엇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지식인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의 비장한 <절명시> 한 구절을 보자.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무궁화 삼천리가 이미 사라졌구나가을 밤 등불아래 책을 덮고서 옛일을 돌이켜보니글을 아는 이, 사람 구실 참으로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