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돈 횡령 혐의' 법원 출석하는 최태원 SK회장 SK 그룹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법원은 최태원 SK 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유성호
대법원까지 가야 확정되겠지만 1심 판결만 놓고 본다면 장 발장과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형 대신 죄를 뒤집어쓰려 한 동생은 무죄로 풀려나고, 동생과 공범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의 결백만 주장하던 형은 구속된 셈이니까요.
원작에서 장 발장은 정작 자신이 다시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는 병마에 시달리는 판틴과 버려진 딸 코제트, 공장 직원들과 시민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끝까지 갈등합니다. 자신이 사라지면 그들이 모두 가난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질 걸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됐으니까요.
그럼에도 장 발장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결국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히는 걸로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습니다(영화에서는 바로 탈출한 걸로 나오지만 원작에선 경찰에 잡혀 다시 감옥에 갇혔다가 탈옥해 코제트를 찾아갑니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경제 범죄로 재판정에 설 때마다 "국민 경제에 끼친 기여와 영향, 경영 공백 등을 고려해" 달라는 논리로 집행유예로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의 양형 이유가 더 눈길을 끕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에서 사업영역의 무리한 확장, 과도한 이윤추구적 기업 운영 등을 이유로 계속해서 여론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대기업의 폐해가 피고인의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데 동의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SK그룹을 대표하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우리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피고인의 형사책임을 경감하게 하는 주요 사유로 삼는 데도 반대한다."
'벤처기업가' 장 발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재벌가 편법 상속 또 한 가지는 당시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원작 첫 권을 펼치면 장 발장 대신 그에게 은촛대를 선물한 미리엘 주교의 삶과 성품에 대한 이야기가 수십 쪽에 걸쳐 장황하게 펼쳐집니다.
당시 미리엘 주교는 나라에서 상당한 연금을 받는 고위직이었지만 자신의 모든 수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자신은 검소하게 살아갑니다. '전과자'라고 따돌림 받는 장 발장을 흔쾌히 맞아들여 따뜻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은그릇을 훔쳐 달아나다 잡혀온 그에게 은촛대까지 선물한 것도 전혀 뜻밖에 벌어진 사건은 아니었던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