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
권우성
"정부 출범 전에 공약 바꾸라니...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그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추진해 온 통상교섭본부를 외교통상부에서 떼어낸 것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과 FTA 체결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온 그였다. 장 교수는 "그동안 외교부의 교섭본부쪽에서 막가파식으로 FTA를 추진했었다"면서 "국내 다양한 산업분야 등과의 조정보다는 자유무역(협정) 추진만 앞세웠다"고 비판했다.
-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새누리당 의원)은 통상과 산업을 합치는 건 개발도상국이나 있는 일이라고 하는데."그 분은 사실상 미국을 천국으로 생각하는 사대주의자 아닌가. 유럽 나라들도 통상을 외교 쪽에 주는 나라가 별로 없다. 영국도 산업과 통합돼 있고. '글로벌스탠다드' 말하면서 미국이 하면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김 의원의) 말이 안 된다는 말씀인가."외교부 입장에서 통상 교섭을 누가 할 것인지, 기능적으로 무엇이 더 나은지 여러 의견들은 있을수 있다고 본다. 물론 저는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김 의원 말대로) 통상을 산업쪽과 함께 두는 건 후진국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것 같다."
- 요즘 인수위 쪽에서 복지 공약을 두고 말이 많다. 보수 일부에선 재정문제를 들어 공약 수정론도 나오고 있는데."(곧장) 당선인 보고 벌써부터 약속을 어기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은 다 반역자 아닌가. 그렇지 않나. 그런 식으로 (공약을 바꾸라고) 한다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것을 금세 느낄수 있었다. 어이없다는 그의 표정이 그려졌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보세요. (공약을) 해보다가 '정 안되겠습니다, 문제가 많습니다'라고 하면 모를까. 지금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요. 그런데 시작부터 (공약을) 바꾸자고 하면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죠. 그렇지 않나요?"- '당초 처음부터 복지 계산이 잘못됐으니까 지금이라도 바꿔라'는 것인데."그러면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자고 하면 그럴수 있다. (웃으면서) 공약 다시 내놓고, 그것 가지고 국민들에게 다시 선택받으면 된다."
"재벌총수 불법 행위는 처벌해야... 지배구조는 다른 문제"그는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국가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나름 긍정적이었다. 장 교수는 작년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새누리당 현수막에 복지가 맨 처음 써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당선인의 복지에 대한 인식도 장 교수와 얼추 일맥 상통한다. 박 당선인은 최근 인수위 국정토론회에서 "복지 정책은 낭비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 세이브(절약)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박 당선인은 "스웨덴, 독일 등도 복지정책을 많이 하지만 성장을 헤치지 않고 오히려 발전한다"고도 했다. 장 교수가 그동안 주창해 온 생산적 복지와 비슷하다.
- 보수 여당이지만 박 당선인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웃으면서)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보수 여당도 복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됐으니, 민주주의의 승리 아닌가."
- 그동안 꾸준히 복지국가를 말했는데, 앞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지."저는 그동안 유럽식의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려면 적어도 (관련 예산이) 국민총생산(GDP)의 25% 수준은 돼야한다. 지금보다 2.5배 예산을 들여야 하는데... 당장은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 일단 박근혜 정부도 세금을 늘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인데."아직 국민들이 복지를 체험하기는 부족하니까 그렇다. 일단 박근혜식 복지를 해보고, 국민들도 '복지를 해보니까 괜찮네'라고 느끼면 세금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황당한 공약보다 조금씩 피부에 와닿는 정책부터 계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이어 복지에 들어가는 세금 증세에 대한 공동구매론을 재차 강조했다. 그동안 꾸준히 역설해온 이야기다. 세금을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같이 쓰는 돈'으로 보자는 것이다. 복지 지출을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로 보는 개념 전환을 강조한 것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말하자면 자기가 내던 병원비 같은 것을 세금으로 내고 의료보험으로 해결하면 국민 입장에선 돈을 아끼는 거예요. 개별적으로 약국에서 의약품 사는 것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같이 정부 기관에서 국민 대표해서 약을 사면 훨씬 싸게 살수 있는 거죠. 연금 등도 마찬가지요. 이러면 국민들에게 좋은 거예요."그와의 이야기에선 복지 문제와 함께 재벌개혁도 빠지지 않는다. 마침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던 날 최태원 에스케이(SK)회장이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그래요?"라며 "아직 뉴스를 보지 못했다"면서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