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일 박사.
권우성
- 박 당선인쪽에서도 일단 증세없이 공약을 추진하겠다고는 했죠."(고개를 끄덕이며) 증세를 하려면 법에 손을 대야 해요. 근데 지금 정치권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지금 나오는 여러가지 세금혜택 등을 줄인다는 거 아니에요? 직장인 신용카드 공제혜택부터 시작해서 기업들에 줬던 연구개발 세금감면 등…. 이게 사실상 증세나 마찬가지예요."
- 요즘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 인사들이 발표되는데."아직 다 발표가 안 됐죠? (그렇다고 하자) 근데 지금 인수위나 이렇게 보면 유럽의 황제, 여왕 스타일이예요. 박 당선인 스스로 독일 여성총리인 메르켈씨를 좋아한다고 하고, 독일식 경제와 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나름 생각도 보이고."
정 위원은 독일에서 오래 공부했다. 서울대를 다니다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쳐 91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10여 년 가까이 베를린에서 머물면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땄다. 박근혜 정부의 독일 모델 벤치마킹에 대해 그는 "비스마르크 시대의 복지국가 정도만 해도 큰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독일 비스마르크는 말 그대로 철혈 제상이라고 하잖아요. 전통 보수주의자인 그는 19세기말 전쟁을 통해 중화학공업으로 산업화를 이끌었죠. 그러면서 노동자계층의 노동권 인정 등을 비롯해 사회보장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했고요. 사람을 쓰는 방식도 그렇고요."그는 "박근혜 스타일은 국가가 주도하는 황제, 여왕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적 관점에서 복지국가를 설정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보수정권이던 김영삼정부나 현재의 이명박 정권과도 분명 다른 길을 갈 거라고도 했다.
- 어떤 면에서 다른 길을 간다는 건가요."박근혜 사람들 보면 전통 보수주의 색깔이 분명하죠. 이번에 초기 인사를 보면 알잖아요. 군인과 법조인 중심으로 가는 것이나…. 과거 보수정권은 시장만능주의였죠. 김영삼시대의 세계화나 이후 규제완화, 개방, 개혁 등이 다 그렇죠.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와는 다를 거라 보죠."
- 아까 황제스타일이라고 했잖아요. 보수적인 복지국가 건설로 간다고도 했고요."(곧장) 그렇죠. 그게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 등 이미 상당 수준 복지국가를 이룬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그래요. 우리 전통 보수주의자들의 뿌리는 유교에 있잖아요. 유교에선 적어도 백성이 굶주리면 임금이, 나라님이 구해주는 거죠. 시장만능은 아니죠. 배 고프면 개인이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그냥 놔두죠."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황제적 통치...재벌 로비도 안 통할 것"- 보수주의와 유교라…."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쪽은 기독교, 가톨릭의 가르침이 있죠. 이번에 히트를 친 <레미제라블>에서 나오는 신부님 있잖아요. 장발장을 형제라고 하죠. 연대의 개념이죠. 기독교 가르침을 유럽식 복지국가의 뿌리로 볼 수 있죠."
정 위원은 "우리도 민족공동체라는 민족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가족공동체 등 이를 토대로 한 보수적인 관점의 복지국가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식 통치 스타일을 정신적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황제적 통치의 모습으로 그렸다.
- 매번 정권초기 때마다 재벌개혁 외치다가 흐지부지 되곤 했는데요."얼마 전 최태원 SK 회장이 구속됐잖아요. 재벌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아마 전보다 분명 엄해질 거예요. 재벌들의 로비도 아마 안 통할 거예요. (웃으면서) 여왕은 재벌 위에 군림하니까. 전통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외치는 게 법과 질서잖아요."
- 그러니까요. 마찬가지로 노동자 파업이나 단체행동 등에 대해서도 강하게 나올 수 있겠죠."(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거예요. 지금 박근혜 정부 인선 등에서 빠진 게 그거예요. 노동이 없어요. 지금 인수위에 노동전문가가 없잖아요. 내각도 아마 정통 보수 관료 중심으로 채워질텐데…. 복지는 보이는데 노동정책이 안 보이죠."
- 유럽쪽 복지의 밑바탕이 대체로 정치권과 노동, 자본 사이의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잖아요."독일도 그렇죠. 독일식 경제나 복지시스템의 절반 정도는 노동문제예요. 노사 간 대타협이 없었다면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복지국가는 없었다고 봐야죠. 독일 뿐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도 그래요."
그는 박근혜 정부가 노사정 간 대타협을 끄집어내길 기대했다. 물론 쉽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특히 현행 노동관련법에서 꼭 고쳐야할 것이 있다고 했다.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기업 등에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해놓은 법은 없애야 한다고 했다. 정 위원은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를 시장 논리로 억압하는 것 자체가 기본권 유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전통 건전 보수세력이라면 해야죠. 예를 들면 이거예요. 선비가 '왕이 잘못했다'고 상소를 올리면 나중에 귀양을 보낼 수 있지요. 그렇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대대로 돈을 갚도록 하고 또 못 갚으면 노비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고. 이것이 요즘 노동현장에서 엄청난 민사상 손배소로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는 거 아니에요. 이건 인간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죠. 전통 보수주의 철학이나 사상에도 맞지 않죠."마지막으로 야당에 할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걱정된다"고 했다. "희망이나 미래가 잘 안 보인다"고도 했다. 유럽의 옛 역사를 들어가며 보수의 장기집권 가능성도 조심스레 내다봤다. 그는 "박근혜정부가 복지정책을 추진할수록 중도성향의 민주당은 설 땅이 없다"고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민주당이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거예요. 지금처럼 있다간 계속 위축될 것이고… 박근혜식 복지에 대항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요. 좀더 왼쪽으로 가는 수 밖에. 또 앞으로 재벌문제 등으로 싸울 일도 없을 거예요. 복지문제로 싸우겠죠.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정치지형도 보수와 자유주의가 합쳐질 것이고 좀더 진보적인 색채가 나올수 밖에 없죠. 민주당이 어떻게 가야할지는 잘 판단해야할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