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도 지음, <앙코르 티베트 돈황>
창작과 비평사
막고굴의 예술적 성격과 그 내용을 적절히 설명하고 싶지만 그것은 내 능력을 넘는 것이다. 전문적 경지의 해설은, 이미 많은 서적들이 나와 있는 상태니 그것들을 참고할 일이다.
아마추어 여행가들 중에도 이곳 석굴을 면밀히 답사하여 자세한 기록을 남긴 분들이 있다. 최영도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그분은 <앙코르 티베트 돈황>(창작과 비평사 펴냄)이라는 책에서 막고굴의 여러 석굴을 주요 전문서적을 참고하며 자세히 묘사하고 고미술사적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막고굴의 여러 석굴을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여행 중에 알게 된 몇 가지 사항만 기록하려고 한다.
17호굴, 돈황 약탈사의 대명사이자 세계적 명소로 만든 주인공우선 17호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17호굴은 위에서 본대로 돈황 약탈사의 대명사가 된 석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황을 세계적 명소로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서구인들은 만일 20세기 초반에 스타인 등 동방학자들이 막고굴 17호굴에서 발견된 불교경전 등을 서구로 가지고 가 그것을 세계에 알리지 않았다면 혼미 속에 있던 중국이 과연 그들 보물을 지켜낼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아주 틀리지는 않는 말이다.
지금 막고굴에 가보면 많은 석굴이 연기에 그을려 훼손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1920년대 러시아 혁명 직후 백러시아인들이 이곳에 몰려 왔을 때 돈황의 책임자가 이들을 막고굴에 연금시켰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한다. 러시아인들이 막고굴에 갇혀 있을 때 그곳에서 밥을 해먹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20세기 초 중국 정부의 문화재 관리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석굴에 들어가 불을 때도 이를 막기는커녕 방치한 실정이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17호굴은 왕원록 도사가 16호굴 입구에 쌓인 모래를 치우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굴이다. 16호굴을 들어가 오른쪽을 보면 마치 16호굴의 쪽방처럼 파인 조그만 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17호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