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청과 평화나눔회의 지원을 받아 강원대학교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고 있는 김정호씨. 그는 눈과 팔과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얼굴에는 파편이 박혀서 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고 당시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파편이 튀었다. 일부 파편은 아직도 그의 몸 속에 박혀서 제거가 불가능한 상태다.
성낙선
지뢰 피해자 김정호(58)씨는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에서 국민학교 2학년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벌판에 나가 놀다가 사고를 당했다. 호기심에 땅 위에 올라와 있는 지뢰를 건드렸다. 물론 그것이 지뢰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가 만진 지뢰 역시 폭풍지뢰였다. 그는 그때 일어난 폭발로 한 쪽 눈과 한 쪽 손을 잃었다. 다리는 정강이가 휘어지는 장애를 입었다.
상처를 치료하느라 서울로 인천으로 안 다닌 곳이 없다. 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 치료비를 대느라 땅까지 팔았다. 그 바람에 집안이 크게 기울었다. 그런데도 몸은 다 낫지 않았다. 그 상태로 수십 년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다.
그런 피해를 입고도 그 역시 그 어디에다가도 하소연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사고를 당한 곳은 군사작전지역이었다. 군사작전지역에 들어가 사고를 일으킨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그저 내 자식이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걸로 생각했다.
그의 기억에 당시 철원에서는 지뢰 폭발이 빈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철원읍 대마리에서는 거의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지뢰 폭발 사고 피해자가 발생했다. 대마리는 정부가 민통선 안으로 농민들을 집단 이주시켜 땅을 분배해주고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한 곳이다. 그런데 이주민들이 그곳의 땅을 개간하면서 지뢰 폭발 사고가 수도 없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의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2006년 한 민간단체의 조사에서 대마리는 지뢰 폭발 사고 다발 지역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금 혼자 살고 있다. 결혼 후 아내와 두 딸과 살았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 그의 곁을 떠나거나 사망한 상태다. 그는 곧이어 닥칠 겨울이 걱정이다. 지금으로서는 당장 살 길이 막막하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이 있지만, 장애가 있는 그를 채용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는 지뢰 폭발 사고 이후 47년을 장애를 입고 살았지만 국가에서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별다른 지원도 해주지 않고 있는 데 섭섭한 마음을 나타냈다. 대선 후보들이 갖은 공약을 쏟아내면서도 지뢰 피해와 관련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 것에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래도 그는 요즘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는 기분이다.
그는 지난 6월부터 강원도와 평화나눔회의 지원을 받아 강원대학교병원에서 47년 전에 못 다한 치료를 받고 있다. 안과 수술과 함께 굽은 정강이를 펴는 수술을 받았다. 강원도와 평화나눔회는 지난해 도내 지뢰피해자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33명의 피해자를 찾아냈고, 그 중 60여 명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업비는 삼성 사회공헌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김씨는 이 치료를 '가뭄 끝에 단비'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번번이 무산... '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 시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