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땅굴 앞에 전시된 장갑차.
이종득
펀치볼 전투는 6.25전쟁 당시 해안분지(펀치볼)을 차지하기 위해 남북이 1951년 8월 31일부터 9월 20일까지 치열한 교전을 벌인 전투를 말한다. 당시 한국과 미군은 지형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북한군 제1사단을 격퇴했다. 당시 남북 군인과 미군 등 약 3000여 사망했다고 한다.
동면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5km 정도를 더 달리니 돌산령터널이 나왔다. 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차로 돌산령을 넘어가는데 20분 정도가 걸렸다는데, 지금은 2분이면 산을 건넌다.
터널 끝, 여기서부터 해안면이다. 해안면은 6개 리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다. 현재 582세대 1485명이 거주한다. 가구당 2.55명이 사는 셈이다. 산을 다 내려오니 면소재지가 보였다. 차를 서행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오래된 동네, 아니 오래된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방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면소재지 주변 곳곳에 분대 병력 정도의 군인이 배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실탄을 정말 장전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무장 병력 모습이었다.
좀 더 서행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일반 시민은 잘 보이지 않고 총을 든 무장 군인들만 자주 보였다. 잠시 뒤 전쟁기념관에 들렀다. 전쟁기념관, 을지전망대, 제4땅굴 출입 확인서를 받으려면 신분증을 재출하고 신분확인서에 주소, 전화번호, 주민번호도 써야 했다.
전쟁기념관을 살펴보는데, 60~70대의 어르신 20여 명이 들어왔다.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한 어르신에게 다가갔다.
-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일흔일곱."
- 그럼 6.25 때 몇살이셨어요?""열다섯 살."
- 그럼 생각나시는 게 많겠네요?""다 생각나지. 근데 뭐하는 사람이야?"
- 네, 저는 취재 왔어요."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있구나. 그럼 사진 한 장 찍어봐."
- 그런데 무슨 계기로 여기로 여행을 오셨어요?""어, 안보가 중요하잖아. NLL 등 말도 많고. 근데 분명한 것은 이제 전쟁을 다시 하면 안 돼! 그동안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 그거 알어야 해. 사람 사는 게 뭐야?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이 키워 사람 만들 듯이, 저쪽도(북한) 어린애처럼 달래야 한다고. 말 안 듣는다고 혼내면 결국 사고 친다고. 애들은 다 그렇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