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국경을 넘어.. 카오산로드로 가는 새벽 첫 차...
양학용
가만히 버스에 앉아서 스무 시간도 아니고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무거운 배낭을 싣고 내리고 걷기를 대여섯 번이면…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쯤이면 세상 일이 다 귀찮고 그냥 침대에 쓰러지고 싶어진다. 그런 중에도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미션을 줬다.
왕궁, 박물관, 미술관 셋 중에서 두 곳 이상을 관람할 것. 그래도 불평하는 놈이 없다. 힘들어도 돌아다니다 보면 좋고, 그러면서 힘든 상황에 잘 적응하고 이겨나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도 기분이 좋다는 것을 이제 그들은 알게 모르게 느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다음다음날을 위한 수상시장 투어와 '마지막 만찬'을 예약한 후에 왕궁에 갔다. 방콕은 여러 번 왔어도, 왕궁에 들어와 보기는 17년 전 신혼여행 때 이후 처음이었다. 왕궁도 에메랄드 사원도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하기야, 수백 년의 세월을 이겨 한 자리를 지켜온 그들에게 겨우 17년의 시간이야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굳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깃발을 쫓아 다니는 단체관광객이 한국인 그룹에서 중국인 그룹으로 바뀌었다는 정도?
왕궁에서 시장, 시장에서 다시 미술관으로 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피부가 까맣고 노랗고 하얀 여행자들로 엄청나게 북적거렸다. 그 한적하고 조용하던 라오스에서 오늘 새벽에 도착한 우리로서는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그날 하루 동안에 아이들은 어땠을까? 그들의 일기를 통해 세 모둠의 행적을 따라 가보자.
첫 번째 모둠이다. 희경, 성호, 유진, 영준이 넷인데 오늘 하루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 조는 왕궁 그리고 국립미술관을 가기로 해서 걸어갔는데, 아직 시간이 일러서 문이 열리지 않았지 뭐야. 그래서 시간도 때울 겸 카페를 찾고 있었는데 고양이가 정말 예쁜 눈으로 벽에서 우릴 보길래 유진이와 내가 고양이를 보고 있었는데…… 악!!!!!!! &#@*%$?+‰ 정말 이런 일 처음 겪어 봤지. 하늘에서 비둘기가 똥을 쌓는데 그게 고양이가 있던 부조에 떨어져서 나한테 다 튄 거야. 그때 그 상황에서 나는 쇼크, 패닉, 딱 이 상태였어. 아무런 말도 비명도 나오지 않았어. 나중에는 덥고 짜증나고 해서 내가 왜 이런 꼴로 있나 서글퍼서 눈물도 나오더라니까. 아무튼 방콕 첫날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나서 아무 곳도 들리지 않고 숙소로 돌아와 몸을 씻고 나갔어. 그래서 겨우 짜증을 참으며 왕궁에 도착했는데 글쎄 반바지는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옷을 빌리는 드레스룸에서 옷을 바꿔 입으라는 거야. 정말 짜증이 터지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어. 그치만 난 조장이고 제일 누나니까 엄청난 인내심으로 화를 누르고 옷을 갈아입고 왕궁을 들어갔어. 역시 왕궁답게 정말 크고 화려했는데 특히 에메랄드 불상이 엄청 인상 깊었던 것 같아. 늦게나마 숙소에 돌아왔는데 아직도 찝찝한 것 같아. 난 잘 거야. 휴~ 짜증 터져. 그럼 안녕~. - 신희경(열여덟 살)여행 첫날 방콕에서 먹은 (일본) 라면집이 있었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았다. 여행 첫날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낯선 나라에 와서 길을 헤매고 고생했지만 막바지에 이르니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이 됐다. - 박성호(열일곱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