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책표지
스토리플래너
"경훈아, 이번에 내가 책 쓰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나?"
2월 말이었다. <오마이뉴스> 15기 대학생 인턴기자 활동을 막 끝내고 쉬고 있던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15기 인턴들에게는 '구 팀장님'이라는 명칭으로 더 익숙한 구영식 기자였다.
구영식 기자는 'MB공화국 5년,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는 주제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과 인터뷰집을 내기로 했는데, 인터뷰 정리 작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응했다.
3월 2일, 류제성 변호사와 한 인터뷰를 시작으로 다섯 번의 인터뷰에 동석했다. 인터뷰이는 '천안함 허위 문자메시지 사건'이나 'G20 쥐그림 사건' 등 표현의 자유 관련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이었다. 그들은 판결과 법 조항의 법리적 문제를 따지기도 하고,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자신의 신념을 말하기도 했다.
기자는 구영식 기자와 변호사들의 인터뷰를 들으며 타이핑하고, 다시 집에 와서 빠진 내용을 정리했다. 인터뷰를 보통 2시간 정도 했고, 그 내용을 완전히 정리하는 데 평균 8시간이 걸렸다. 5번의 인터뷰를 정리하는 데 총 40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인터뷰는 일주일에 한 번을 목표로 진행했지만,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연기될 때도 있었다. 작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마침내 5월 6일 마지막 녹취록을 정리했다. 기자의 작업은 그것으로 끝났다. 녹취록을 바탕으로 보충 인터뷰를 하고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일은 구영식 기자의 몫이었고,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것은 출판사의 일이었다.
10월 20일, 드디어 책이 출간됐다. 기자가 한 작업의 결과물이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걸 보니 뿌듯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구영식 기자에게 받은 책을 조심스레 넘겼다. 그와 함께 한 지난 인터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골목길에서 눈 치우자고 플래카드 걸면 집회냐?"인터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들에게 현행 법 조항 및 판결의 문제점을 듣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부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법 조항이 대단히 애매하고도 포괄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도 어떤 판결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은 만큼 자의적 해석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법 조항은 엄격해야 한다. 누구든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애매한 조항 때문에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면 억울할 테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용산참사 대책위 기자회견 사건'을 변론한 류제성 변호사는 "집회의 정의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집시법에는 집회의 정의 규정이 없다. 그냥 판례상 2인 이상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모이면 집회라고 해석한다. 딱 그 기준만 놓고 보면 기자회견은 2인 이상이 공동의 목적으로 모인 것이어서 집회 신고를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신고를 안 했으니 해산명령의 대상이고, 해산명령에 불응하면 해산명령불응죄가 된다. 우리는 두 사람 이상이 골목길에서 눈 치우자고 플래카드를 걸면 그것도 집회냐, 그거 신고 안 했다고 해산시키고, 처벌할 거냐고 반문했다.(107~108p)이처럼 애매하고도 포괄적인 규정은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어진다. 어떠한 성격의 행사든 2인 이상이 공동의 목적으로 모이면 집회가 될 수 있고, 집회인데 신고를 안 했으니 불법집회라는 논리로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규정은 특히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에 주로 적용된다. 용산참사 이후 용산참사범대위가 주최하거나 참여하는 집회, 시위는 거의 다 금지됐다. 류제성 변호사는 MB정부의 이러한 행태를 소리 높여 비판한다.
집시법이 기계적으로 다 적용된다면 모든 기자회견은 처벌돼야 하고, 웬만한 집회는 다 처벌되어야 하는데, 왜 유독 용산참사만 그러냐? 이것이 경찰의 독자적 판단이겠냐? 용산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다. 그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란 게 망루에 올라간 사람을 중벌에 처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피고인 방어권 등을 무시하고, 수사기록열람 등사조차도 금지하는 상태에서 중형에 처했다.(122~12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