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둘레길
김종길
한라산 둘레길은 현재 1구간과 2구간만 뚫려 있다. 1구간은 무오법정사에서 시오름까지 5.5km, 2구간은 거린사슴오름에서 돌오름 아래까지 5.6km다. 한라산의 허리께인 해발 600~800m의 둘레를 따라 걷는 길이다.
여행자가 택한 것은 2구간이다. 이 둘레길은 임도를 활용한 숲길이다. 일제강점기 '머리 둘레를 감은 천'이라는 뜻의 하치마키도로(병참로)라고 불렸던 길이다. 마치 머리띠처럼 한라산 둘레를 한 바퀴 빙 돌려 일본군들이 울창한 산림과 표고버섯 등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병참로란다.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50m쯤 아래 오른쪽으로 둘레길 표지판이 보였다.
차 한 대는 족히 지날 임도를 따라 숲에 들어서니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은 농장 가는 길이고 '한라산 둘레길 이용 안내'라고 적힌 나무 표지판이 있는 오른쪽이 둘레길의 시작이었다. 거리는 5.6km였다. 이때만 해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안내문에는 비가 올 때나 비 온 뒤 이틀 동안 출입이 통제되고 14시 이전에 이용을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14시'를 '4시'로 착각하여 오후 3시가 다 된 시각에 둘레길에 접어들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뒤였다. 아직 덜 알려진 이유도 있었지만 의외로 둘레길을 걷는 이가 없었다. 이날 여행자가 숲에서 만난 이는 겨우 7명이었다. 부부인지 부녀인지 헛갈리는 어느 남녀, 자매인 듯한 여자 둘, 온 얼굴을 무장한 채 눈만 빠끔 내놓고 혼자 온 아가씨, 계곡에서 신선인 양 휴식을 취하던 중년부부가 전부였다.
근데 한결같이 이들은 출발지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여행자와 같은 방향으로 둘레길을 걷기 시작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표고버섯장이 있는 4.2km 지점까지는 숲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걸었다. 시간을 보니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때부터 걸음은 자연 빨라지기 시작했다. 숲의 어둠은 산 아래보다 훨씬 빨리 오기 때문이다. 처음의 느긋했던 발걸음은 시간이 늦었다는 걸 직감하고 잰걸음으로 바뀌었다.
숲은 점점 깊어지고... 어마어마한 제주조릿대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