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이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흐르는 엄마
추연만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지독한 멸시와 천대. 남도 아닌 낳아준 엄마로부터 받은 정신적 학대는 자신감을 빼앗고 자존감을 상실하게 했다. 그런데 딸마저 자신과 같은 운명이라니... 친엄마도 그렇게 밀어내고 부인했는데 남편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결국에는 자신도, 딸도, 남편에게 짐만 되다가 버림받게 되겠지 하는 불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는 저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키 크고 잘생긴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 저 같은 아이가 있다는 것에 대해 늘 창피하게 생각했지요.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어요. 당신 사주에는 자식이 셋뿐이라고... 그런데 구석에 병든 것이 하나 조그맣게 있다는 둥... 엄마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너무 많이 했죠.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자식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우등생을 놓치지 않았는데 엄마에겐 그런 것도 소용없었어요."경기도 평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선혜씨는 착하고 얌전하며 속 깊은 아이였다. 아니, 얌전하고 속이 깊지 않으면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없는 자식 취급을 받고 자랐지만 그런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나를 왜 이렇게 낳았느냐'는 투정이나 원망도 해보지 않았다.
"살면서 딱 한 번 엄마에게 대들어봤어요. 고등학교 마치고 기숙사가 있는 직장에 다니던 때였지요. 명절이라 집에 내려왔더니 엄마가 절 주려고 옷을 사다놓으셨더라고요. 그때 엄마에게 말했어요. 누굴 위한 선물이냐고요. 내가 선물 달라더냐고. 평생 자식 취급,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면서 옷 같은 게 뭐 대단하냐고요. 옷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거라고요. 딱 한 번 그랬는데 그것도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가 되더라고요..."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엄마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선혜씨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사랑할 수도 없었다.
"누구도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면 '나도 저 벌레 같다'고 생각했어요. 거울에 제 모습이 비춰지는 걸 너무 싫어해서 거울도 보지 않았고요. 예쁘다는 말도 놀리고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절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어린 시절의 상처를 깊은 멍울로 가지고 있는 선혜씨. 그 상처는 마흔 중반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아물지 않고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서러운 눈물이 돼 흘러내린다. 하지만 예인이에게 만큼은 그런 슬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귀하고 예쁜 딸로 키워내고 싶었던 것이다.
"제 인생이 너무나 불쌍하고 측은해서...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죽으려는 마음도 여러 번 먹었어요. 하지만 예인이 때문에 죽을 수가 없어요. 예인이는 저처럼 불행하면 안 되거든요. 우리 예인이는 꼭 행복해야 하거든요. 척추 뼈가 내려앉아서 뼈마디가 전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파서 손가락하나 꼼짝할 수 없다가도 예인이가 '엄마 물~' 그러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져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해요. 죽을 것처럼 앓다가도 예인이가 '엄마~'하고 부르면 바로 일어나 달려가거든요. 예인이가 저를 살린 거고 예인이가 저를 살게 하는 거지요."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를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엄마는 또 다른 불행한 딸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과잉보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쏟았다. 그래서인지 예인이는 누가 봐도 그늘 없는 아이로 잘 자랐다.
엄마가 슬플까봐 '왕따' 사실도 말하지 않은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