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성폭행과 관련된 책들저자의 뒷 표지 문구가 눈길을 끈다. 결국, 말해서 죽는 이는 가해자였다.
장윤선
가해자인 친부는, 책에서 상세히 서술되지는 않지만 역시 어렵고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가해자의 친가가 매우 궁벽한 시골의 아주 가난한 곳이었다고 기억한다. 친할머니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어린 저자가 요강을 잘 버리지 않았다고 요강 속의 오줌을 먹이는가 하면 어릴 때는 귀찮은 존재라며 남의 집에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친할아버지는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아버지가 없는 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외가는 훨씬 상황이 낫긴 하지만, 어렵기는 매일반이었다. 심한 치매를 앓는 외할아버지를 두고 외할머니와 저자의 어머니가 하루종일 일을 해 먹고 살았다. 친부는 저자의 어머니를 "아무하고나 붙어먹는 더러운 년"으로 증오했는데, 이는 친부의 왜곡된 의식에서 나온 여성 혐오로 보인다.
이와 같은 저자의 증언 속에서, 우리는 친족 성폭력이 배태되는 배경과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어려운 가정,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가부장적 권위와 폭력을 무기로 극단적인 '가정폭력'을 저지를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친족 성폭력이다. 이는 20년 전에도 이미 언급되었던 것들이다. 당시의 심포지엄에서, 성폭력을 상담하는 여성 목회자분이 하셨던 말씀이 또렷이 기억난다.
친오빠에게 수년을 성폭행당한 한 소녀의 사례였다. 너무나 가난했던 집에서, 다 크고 나이 든 오빠와 어린 여동생이 한방을 쓰며 지냈던 집이 있었다.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사회에 대한 울분과 적개심에 차 있던 오빠. 돈이 없어 연애도 못하고 사창가도 못 가는 오빠가 한 방을 쓰던 여동생을 성추행하다가 결국은 성폭력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동생의 입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하게 된 사례였었다. 친족 성폭력을 소아 성애자나 성도착증 환자의 소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례가 이미 이런 사건의 사회적 맥락을 지목하고 있다.
성의 문제가 아닌 폭력의 문제
그러나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사례를 증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저자가 던져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성폭력도 폭력의 한 부류이고, 그렇기에 치유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일을 당하고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반응들이 별로다. (중략) 저런 일 당하면 살기힘들겠다. 정신이 이상해지겠다 생각하는 사회의 편견도 기분 나쁘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그럼 친아빠라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한 나는 어쩌란 말인가 싶어 마음이 힘들어진다."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가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하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성폭력, 혹은 "성"자체를 너무나 두려워하며 금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성폭력은 극복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이야기 되곤 한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에 강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
피해자들이 모자이크와 우스꽝스러운 음성 변조를 벗고, 아픈 상처를 토로하고, 극복한 무용담을 나누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꿔 본다. 나도 못 해본 그 일을"가해자에 대한 연구와 대책, 절실하다만약 김보은 사건이 없었고, 성폭력 특별법도 없었다면, 그녀의 자유가 가능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자는 성폭력 특별법의 원년 판결자이다. 그녀도 언급했듯이 좋은 형사과 판사가 있었기에 친부가 교도소에 7년 동안 수감될 수 있었다. (이것도 너무나 짧다고 느껴지지만!) 하지만 아직도 많은 점이 미비하다.
친족 성폭행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피해자를 위한 장기적인 쉼터의 마련, 상담치료를 위한 경제적 지원(은수연씨는 상담 치료를 위해 버는 돈의 거의 전부를 써야 했다고 말했다.), 전문화된 상담 인력(은수연씨가 최초로 가출했을 때 그녀를 상담한 여교수는 그녀에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즐겼느냐고 했다.)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교육이 더 많아지고, 여기에 친족 성폭력을 고려한 내용이 포함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아직은 전인미답의 상태로 남아 있는 가해자에 대한 연구와 대책이 절실하다. 친족 성폭행의 신고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들이 교도소를 나온 가해자들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 친부는 수연씨의 친구 한 명도 성폭행했다. 가해자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또 다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가해자들의 환경, 정신상태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그에 따른 대책이 마련될 때, 친족 성폭행은 물론 전반적인 성폭행의 암울한 고리를 더 많이 끊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유난히 많았던 성폭행에 대한 수 많은 말들, 대책들이 벌써 잊혀져 가려고 한다. 잊혀져서는 안되는 성폭행 피해자들을 꼭 기억하자. 그리고 그 폭력의 한가운데 서 있는 친족 성폭행의 피해자들에게도 눈길이 머물기를.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은수연 지음,
이매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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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왜 그랬어요"... 근친 성폭력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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