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릉 너머로 남산이 보인다.
정만진
박씨 임금 셋이 나란히 누워 있는 삼릉삼릉은 경애왕릉에서 북쪽을 응시하면 소나무 사이로 보인다. 50m나 될까.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가 닿을 지척이다. 삼릉이니 무덤이 셋인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삼릉은 8대 아달라왕(154∼184년 재위), 52대 신덕왕(912∼917), 53대 경명왕(917∼924)이 그 주인공들이다.
경순왕릉은 경주에 없다. 그는 나라가 망한 후 고려의 서울 개경에 가서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무덤도 임진강 인근에 만들어졌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번지가 경순왕의 '현주소'이다.
그렇게 56대 경순왕릉은 멀리 '고려' 땅에 있다 하더라도 그 바로 앞 임금인 55대 경애왕과, 54대 경명왕, 53대 신덕왕의 무덤들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은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과 750년 이상 차이가 나는 8대 아달라왕의 무덤이 함께 있는 것은 그 까닭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모두들 박씨 왕이어서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남산의 서쪽 비탈에 있는 왕릉은 모두 박씨의 것이다. 가장 남쪽의 55대 경애왕, 바로 위 삼릉의 54대 경명왕, 53대 신덕왕, 8대 아달라왕, 다시 삼릉과 포석정 사이의 6대 지마왕, 포석정과 나정 뒤 장창골의 7대 일성왕까지 모두 박씨 왕들이다. 시조인 박혁거세도 이곳 나정에서 출생했고, 최초의 궁궐도 이곳 창림사터 일원에 지었다. 남산과 이어지는 치술령 일대도 박제상 유적이다. 선도산 일대가 김춘추 일가의 산소였듯이 남산 서쪽 일원은 박씨들의 터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