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9월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남소연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에도 한풀 꺾인 여론의 흐름은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대선후보 양자대결에서 야권 후보인 안철수, 문재인 모두에게 뒤지는 것으로 조사된 것은 새누리당과 당사자에게도 큰 충격일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스쳐지나가는 민심의 흐름일 뿐"이라며 애써 안위하기엔 격차가 심상치 않다.
박 후보의 사과는 1998년 그가 정치를 시작한지 14년 만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파격 그 자체다. 5·16과 유신, 인혁당을 언급할 기회는 그동안 많았지만 그때마다 그는 "역사가 평가해야 할 문제", "불가피한 선택" "구국의 결단" 등으로 얼버무려 왔다.
그런데 거침없는 상승세를 치달리던 지지율 곡선이 추락하는 시점에서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한 번 꺾인 대세론을 다시 세우는 데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아버지 박정희가 강탈한 장물'이란 논란에서 한치 앞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정수장학회, 영남대, 부산일보 등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같은 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제기될 정도다. '박근혜 중앙선대위'의 위원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24일 뉴스Y의 '출근길 인터뷰'에 나와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 논란과 관련, "5·16쿠데타와 유신, 인혁당 등 세 사건뿐만 아니라 쿠데타 이후 또는 유신시대에 이뤄진 정치적 문제들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그는 "부산일보·문화방송·영남대 같은 문제들을 털고, 즉 정수장학회 문제도 말끔히 털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다면 "5·16은 쿠데타이고 유신은 독재였고 '인혁당 사건'은 무죄였다는 객관적 사건을 이미 인정하고 있는 국민이 (박 후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여파 때문인지 여론의 흐름이 지역에 따라서 다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대선 80여 일을 앞두고 부산·경남(PK)지역 민심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전통적 여당 지지 기반이던 이곳에서 여론지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박 후보가 24일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 직후 곧장 부산을 찾은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PK지역의 경우 다자대결에서 박 후보가 50.7%로 겨우 과반을 차지했을 정도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세론은 아직 완벽하게 무너지지 않았다"며 박 후보 지지율 추락이 바닥을 쳤다는 기사가 나와 당황스럽게 한다.
<조선일보>는 26일 여론조사 결과들은 그저 일시적 현상일 뿐이며, 심지어 하락세가 멈췄다는 기이한 해석을 내놓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위기 속에서 '박근혜 구하기' 총대라도 멘 듯한 <조선일보>는 이날 5면에 <박 지지율 바닥 쳤나...하락세 멈춤 조짐>이란 제목의 기사로 다른 신문들과는 정 반대의 논조를 펼쳤다. "급한 내리막 추세를 보이던 박 후보 지지율이 역사 인식과 관련된 사과 기자회견 이후 바닥을 치는 듯한 분위기"라며 "박 후보의 하락세가 멈추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조선일보>는 '급락'하던 박 후보 지지율이 '급정거'한 것은 "'과거사 사과 회견 효과'와 함께 탄탄한 고정 지지층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박 후보가 5·16, 유신, 인혁당 관련 사과를 했으나 여전히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는 다른 주요 신문들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때문에 박 후보로서는 이번 추석민심을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2006년 추석 이후 처음으로 이명박 후보에 지지율이 역전당한 이후 대통령 자리를 내줬던 뼈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건은 주변 지지인물들과 선대위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박 후보 전략과 방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가 여전히 미지수다. 후보에게 줄을 서느라 쓴 소리를 마다하거나, 기자들에게 욕설을 해대면서까지 충성경쟁을 일삼는다면 역전은 고사하고 내리막길에서 더 큰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된다. 가뜩이나 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그를 두고 '대통령의 딸이냐', '독재자의 딸이냐', 또는 '과거사를 사과하기 전의 박근혜냐', '사과 후의 박근혜냐'를 묻고 있다.
[추석밥상 이슈 ③] 대통령 사저특검,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을까?"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4대강으로 홍수·가뭄 모두 극복", "한일군사정보협정 처리과정 질책" 등 많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샀던 이명박 대통령이 급기야 '내곡동 사저 부지매입 의혹 특검법'을 수용함으로써 현직 대통령 가족이 특검의 심판대에 오른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됐다.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매입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속 시원히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결국 가봐야 아는 것' 아닌가? 4대강 사업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만과 세뇌의 정교성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기된 의혹들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는 게 민심의 요구다.
특히 사저·경호동 부지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아들 시형씨가 사저용 3필지를 공시지가보다 10%가량 싼 11억2000만 원에 매입한 반면 경호처는 공시지가의 4배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한 점, 또 시형씨가 부담액의 일부를 국가에 떠넘겼다는 의혹이 일었으나 검찰은 "그린벨트에 세워질 경호동의 지목이 나중에 대지로 바뀌면 땅값이 오르게 되니 미래 수익을 고려해 시형씨 부담을 덜어준 것"이라고 설명한 대목은 반드시 다시 규명돼야 한다. 사저를 시형씨 명의로 구입한 것이 명의신탁이 아니라는 검찰의 수사 결론도 마찬가지다.
시형씨에 대해 단 한 차례의 서면답변서를 받는 것으로 조사를 끝낸 것만 봐도 얼마나 권력에 약한 검찰인지를 알 수 있다. 서민들 같으면 녹초가 되도록 불려 다녔을 사건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하지만 문제는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한 만큼 얼마나 잘 협조하는가도 관건이다. 정녕 떳떳하다면 뭐든 두려울 것이 없겠지만, 이리저리 피해 빠져나가지 않도록 특검 추천권을 쥔 민주당은 지혜와 전략을 잘 짜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간 금세 후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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