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오후 여의도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2기 지도부 출범식'에서 박원석, 강동원, 서기호, 정진후, 김미희, 김제남 의원 등 의원들과 참석자들이 애국가 1절을 부른 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권우성
합의된 혁신의 내용이 없다는 것은 분당 이후 신당권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분당으로 공동의 적대가 사라지는 순간, 숨어 있었던 이질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석기 의원이 제명되지 않음으로써 실현될 수 없었던 혁신의 내용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의 이질성을 묶어줄 공통성은 정치적 이해관계 외에는 찾기 어렵다. '민주당으로 합류'의 시나리오가 전혀 뜬금없이 들리지 않는 이유다.
신당권파가 당내 부정을 일소하거나 패권에 대한 적극적인 청산의지가 있었는지도 의문스럽다. 초기부터 일관되게 강조한 '정치적 해법'은 자신의 부정을 드러내고 성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문제를 봉합하는 방법에 가까웠다. 스스로 '누구도 부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진상에 대한 이견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데는 소극적이거나, 추가 진상조사에서도 특정 집단에게만 초점을 맞추려는 의도가 과잉표출된 것은 이러한 혐의를 강화시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2차 진상조사위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이 되었던 소위 '김인성 보고서'다.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컴퓨터 법의학) 전문가인 김인성 교수는 2차 진상조사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온라인 투표결과를 조사하면서 신당권파 일부 인사의 부정행위를 적시했다. 더구나 범죄자로 지명당한 이가 1차 진상조사위원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김 교수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이라고까지 단언한 의혹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침묵했고, 신당권파는 공개 검증을 거부했다.
1차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박무 위원이 반박 보고서를 내기도 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 말이 맞는지 검증해볼 도리가 없다. 공개검증을 거부했던 이유는 이것이 '구당권파의 불순한 의도로 점철된 보고서'라는 것이었는데, 김인성 보고서의 내용을 신뢰하는 구당권파의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이 될 리 없다. 합리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라도 공개적인 검증을 통해 의혹을 해소해야 했지만, 결국 이 문제는 보수적인 성향의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회장 변희재)가 당사자들을 고발함으로써 검찰의 손으로 넘어 갔다.
자신이 수적 우위를 점한 공간에서 진행된 의사결정 과정도 패권의 단절과는 거리가 있었다. 패권은 또 다른 패권으로만 근절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패권청산이 단지 특정 정파의 제거만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면, 구당권파가 다수를 점할 때와 신당권파가 다수를 점할 때 동일한 논리가 위치만 바꿔 반복되는 상황을 혁신이라 부르기는 민망할 것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수적 우위를 활용해 자신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것이 패권이라면, 화룡정점을 찍은 것이 공정성을 담지해야 할 당내 사법기관인 당기위원회를 동원한 소위 '셀프 제명'시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과도한 언론 플레이나 정치공학적 사업 방식, 종종 자행되는 종북 낙인찍기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구당권파보다 더 심한 패권'이라는 냉소가 퍼져나가는 이유를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성찰이 부족한 구당권파... 쌓였던 불만 터져 나온 것 그러나 신당권파의 이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데에는 구당권파의 역할이 컸다. 문제의 시작이 어떠했건 간에, 평행선의 간격을 좁히기 어렵게 만들었던 계기는 5월 12일 중앙위 폭력사태다. 5월 12일 사태의 핵심은 단순히 폭력사용 때문에만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공동체 내부에서도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는 사안이 있다면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