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의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등 최근 발생한 강력사건과 관련해 민생치안 점검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8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김기용 경찰청장에게 나주 사건 등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한 번 정부에게 묻는다. 선거용 '치안 쇼'가 아니라 정말 문제 해결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경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부리는 일부터 그만 둬라. 경찰을 본래의 존재목적인 국민의 파수꾼 자리로 되돌려 놓으라는 것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딴청 피우지 마라. 8월 말 여의도 칼부림 사건 때, 1개 중대의 경찰이 코 앞에 있었으면서도 즉시 달려오지 않았다. 새누리당 당사를 지키기 바빴던 탓이다.
국민이 눈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려져 있는 데도, 경찰은 권력의 경비 노릇에 여념이 없었다. 무엇으로부터 권력을 지키고 있었을까? 우습게도 '국민'으로부터다. 당시 새누리당사 앞에는 쌍용자동차 노조 해고자들의 집회와 농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부당해고로 삶이 위태롭게 된, 몇 명 되지도 않는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는 득달같이 나서서 차단하는 경찰이, 국민의 꺼져가는 목숨은 멀뚱거리며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국민들의 생존권 요구를 틀어막기 바쁜 경찰이 그들의 생명을 존중할 수는 없으니까. 주린 국민의 외침을 외면하는 경찰이 고통의 비명에는 제대로 반응하겠는가. 오히려 죽어가는 희생자를 지혈해 목숨을 살린 건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노동자였다. 시민들이 나서서 범인을 막다른 길로 몰고 난 후에야 경찰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경찰이 왜 존재하는지 회의가 들 정도다. 사건 목격자가 당사 앞 경찰에게 달려가 빨리 와달라고 했으나, 경찰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농성자들이 '우리가 새누리당 당사에 안 들어갈 테니 빨리 가 보라'고 재촉할 정도였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은 흉기에 찔린 여성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옆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시민들이 나서서 지혈을 시작했다.
경찰, 무수한 대책과 각오 내놓았지만... 올 4월, 수원에서 경찰이 112 전화에 부실대응해 한 여성이 살해되자, 경찰은 무수히 많은 각오와 대책을 내놓았었다. 그후 무엇이 나아졌는가? 여의도 칼부림 사건의 목격자는 112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잠시 후에 다시 걸라"는 안내가 나왔다며 허탈해 했다. 수원 살인사건 후 경찰청장이 '112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하겠다'고 발표한 게 불과 넉 달 전 아니었던가.
바로 그 수원에서 최근 일어난 일을 보자. 지난 달, 20대 여성들이 길을 가다 술취한 남성 두 명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마침 순찰차가 근처를 지나고 있었기에 피해자가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다른 신고 때문에 가봐야 한다'며 그냥 가버렸다. 경찰의 허술한 대응에 대해 여론이 나빠지자, 경찰은 '위급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변명했다.
4개월 전 살인사건에서도 '위급성' 이야기가 나왔다. 신고자가 고통스럽게 절규하는데도 경찰은 '부부싸움이네' 하며 7분 넘게 그 소리를 듣고 있던 것이다. 이런 경찰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시민이 운행중인 순찰차에 달려들어 울면서 구해 달라고 외쳐도 위급하지 않은 상황이고, 112에 전화를 해 비명을 질러도 위급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경찰을 말이다.
권력의 경비병으로 전락한 경찰에게는 국민의 안전문제 자체가 '위급하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지키는 일이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를 호위하던 경찰이 '사람이 죽어간다'는 신고를 받고서도 멀뚱거리며 자리를 지키던 모습은 한국 경찰의 현실을 극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경찰이 시위대 몇 명만 보여도 득달같이 달려가 '닭장차'로 사방을 겹겹이 에워싸는 기동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