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마을 방범순찰에 나선 주민들이 2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2동 마을 주변을 순찰하던 도중 밤 늦게까지 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빨리 귀가하라"며 타이르고 있다.
유성호
23일 오후 9시 20분. 박상열(78), 진정임(62), 안영숙(52), 최복순(47). 이정환(47) 다섯 명의 산새마을 마을 지킴이들이 사랑방을 떠났다. 매주 한 번 돌아오는 자율방범활동인 마을 순찰 때문이다. 야광조끼에 경광봉을 든 지킴이들은 이웃에 마실가듯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어두운 골목길에 쓰레기가 버려지는지, 버려진 공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꼼꼼히 수색한다. 아이들에게는 "빨리 집에 안 들어가면 엄마한테 전화한다"며 겁을 준다. 지나가는 이웃들에게는 안부를 전한다. 지킴이 이정환(47)씨는 "바쁜 출근길에도 골목길에 주차가 삐딱하게 돼있으면 전화해서 '다시 주차하라'고 한다"며 "평소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마을 지킴이'가 밤마다 순찰... "처음엔 '미친 짓'이라고 했는데"마을지킴이 활동은 지난 5월부터 시작됐다. 마을 주민 25명이 매주 한 번씩 순찰을 돈다. 순찰코스는 은평구 신사2동 237번지 5~9통 지역 일대다. 평소 같으면 퇴근 후 집에서 쉬어야 할 시간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이정환씨는 "처음 순찰 돌 때는 주민들이 밤에 미친 짓한다고 그랬다"면서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까 마을 사람들이 고마워하더라"고 말했다.
지킴이는 마을 주민에게 '안전 귀가'를 선물했다. 전날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 지나가던 행인 2명이 난데없는 칼부림을 당했다. 산새마을 주민들은 마을지킴이 덕분에 든든하다. 지킴이가 나선 후 마을 공터에서 가출 청소년들이 소란을 피우는 일도 없어졌다.
퇴근 길에 지킴이들을 만난 양희정(32)씨는 "지킴이가 없을 때는 집에 있는 동생한테 버스정류장까지 나오라고 할 정도로 안심이 안 됐다"면서 "지킴이 덕분에 이제는 동생이 더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이어 "잘 알지 못하는 사이지만 한 마을이라고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걸 보면 마을 활동에 관심이 간다"고 덧붙였다. 강지희(10)양은 "(마을 지킴이가) 처음에는 무서운 사람들인 줄 알고 피해다녔다"면서 "지킴이가 나오는 시간에는 이렇게 엄마를 마중 나갈 수 있다"며 웃었다.
산새마을은 서울시 은평구 봉산 중턱에 있다. 마을버스가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달동네'다. 산에 부엉이, 뻐꾸기, 딱따구리 등 산새가 많아 산새마을이 됐다. 이날 지킴이 순찰을 도는 시간에도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을에는 지은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 많고 저소득층 비율이 높다. 50~60대 장년층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