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아트캠프에서 열리는 풍물수업에 참가한 남문시장 상인들. 억수같은 비를 뚫고 10여명의 학생들 가운에 남문시장 상인 7명이 수업에 참여했다. 뒷줄 맨오른쪽은 강사인 김용범 풍물패 '터울림' 대표.
권우성
그런데 공연 날짜를 들은 정천석씨가 "27일?"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건어물 가게를 하는 김영심(60)씨가 "아들내미 결혼식 아냐?"라고 하자 "아들 장가가는데 어떻게 거기를 나와", "결혼식 끝나면 다 끝나는 거 아니야?", "폐백 받으면 다 끝나는 거야"하는 말들이 오간다. 박근수씨는 "날짜를 조정해 보겠다"고 말했다.
풍물 선생님은 김용범 풍물패 터울림 대표가 맡고 있다. 처음에는 공간이 없어서 대형노래방에서 풍물수업을 했단다. 태풍으로 전선이 타버려 불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교실에서 상인들은 꽹과리, 장구, 북을 집어 들고 둥글게 섰다. 김용범 대표가 원 가운데 선다.
"꽹과리 한 번 해보세요. 쟁재쟁재쟁." 이종국(59, 가방), 강기원(61, 가방·액세서리), 윤호원(65, 방앗간)씨가 "쟁재쟁재쟁" 입으로 소리를 내며 꽹과리를 친다.
"다음은 북.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김용범 대표의 시범에 따라 정천석씨와 김학규(50, BYC)씨가 "둥둥" 북을 두드린다. 이어 "덩더쿵덕쿵, 덩더쿵덕쿵" 김영심씨와 지향희(54, 생선)씨의 장구 소리가 들린다. 꽹과리, 북, 장구 소리가 어우러지자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상인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마트 사장님은 '드러머', 중국인 직원은 '선생님'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상인들은 활력을 찾았다. 윤호원씨는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고 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장사를 잠시 멈추고 30분 거리에 있는 풍물 교실을 찾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가게는 남편이나 부인에게 맡긴다.
지향희씨는 "아직은 배우는 단계니까 흥분되고 얼떨떨하고 그렇다"면서 "시간이 있어서 매일 하면 더 빨리 진도가 나갈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정천석씨는 "10대, 20대처럼 머리가 빨리 빨리 안 돌아가니까 일 주일 있다가 오면 또 잊어 버리고"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씨의 부인은 합창교실에 나간다.
박근수씨는 "보통 한 점포에서 참여를 하면 가족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상인들은 표정부터가 다르다"고 말했다.
남문시장에서 할인마트를 운영하는 손덕용(49)씨는 매주 월요일 '밴드' 교실에 참여한다. 손씨는 "총각 때 기타를 배웠는데 드럼을 해보면 멋있을 같아서 드럼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밴드는 드럼 2명, 건반 2명, 기타 2명, 잼베 1명, 노래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밴드 이름은 "술 마실 때마다 바뀌어서" 아직 못 정했단다. 밴드에는 상인보다 주민이 더 많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중국어 교실은 남문시장에서 일하는 중국인이 직접 선생님으로 나선다. 손덕용씨가 운영하는 할인마트 직원인 송민씨가 그 주인공.
박근수씨는 "남문시장 고객의 50% 정도가 중국인이라 상인들이 중국어와 문화를 배우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중국 사람들은 속옷 골라주면 화내고, 생선 썰어주면 '왜 내 생선에 손대냐'고 하는 등 (한국과) 문화가 다르다"면서 "다행히 마트 사장님이 협조해 주셔서 중국인 직원분이 업무 시간 중에 한 시간 정도 수업을 한다"고 덧붙였다. 동아리 활동은 금천아트캠프를 비롯해 동사무소, 자바르떼 사무실 등에서 진행된다.
김, 두부, 튀김, 떡, 어묵... '상품' 아닌 '작품'으로남문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ㅅㅁㅅ'+'ㄹ'이라고 적힌 동그란 간판이 달려 있는 가게를 발견할 수 있다. '소량 맞춤 생산'+'예술'의 줄임말로, '예생네트워크' 시범가게다.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동안 남문시장에서는 상인들과 예술가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벧엘김구이, 태초두부, 코끼리튀김, 한가네낙원떡집, 이레수제어묵. 5개 점포에 각각 한 명의 예술가들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홍영선 자바르떼 문화사업단 기획팀장은 "고객들이 전통시장이 아니라 홈플러스를 가는 이유는 대부분 가격 때문인데, 우리만의 마케팅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면서 "문화적 특성이 있는 상품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남문시장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