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수 안내원(왼쪽), 김용성 운전기사 아저씨(오른쪽)
신은미
방현수 조카는 아침마다 조깅 쫓아다니느라 힘들 때면 어리광을 부린다.
"이모, 이모부! 힘들어 죽겠습네다. 한 5킬로는 깠습네다. 몸 보신 좀 시켜 주시라요."(체중이 줄었다는 말)그 모습이 참으로 친근하고 정이 간다. 남편은 방현수가 '이모, 이모부'라고 말만 하면 "그래, 오늘 밤은 뭐가 먹고 싶어? 뭐든지 말해. 다 사줄 테니..."라고 답했다.
일행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는 오후 6시 정도에 제공됐다. 지난해 10월, 남편과 단 둘이서 왔을 때는 저녁식사 전 우리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설경이가 미리 물어보기도 하며 식사 시간을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체 여행이다 보니 미리 정해 놓은 식당에서 비교적 정확한 시각에 식사를 하게 됐다. 보통 식사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오면 자유롭게 쉴 수 있었다.
이런 '자유 시간'에 우리 부부는 설경이와 방현수 안내원과 함께 커피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다. 물론 관광객과 안내원이 아닌, 동포로서의 정을 듬뿍 나누면서 말이다. 그저 다 어디서나 하는 얘기들이 오갔다.
방현수 안내원의 관심은 단연 자식 교육이다. 특히 여덟 살난 딸아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소조활동'(과외활동)으로 무용을 한단다.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딸아이의 동영상을 봤는데, 정말이지 춤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앞으로 무용을 전공시키라'는 내 조언에 "실력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경쟁이 심하다"며 "웬만한 치맛바람이 아니면 턱도 없다"고 걱정이다. 남이나 북이나 우리 민족은 자식 교육이라면 부모들이 인생을 거는 듯하다.
그러다가 식당이 닫기 직전에 방현수 안내원의 핑계로 한 끼 식사를 더 한 뒤 호텔로 돌아와 꼭대기 층 회전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전 12시가 다 되도록 북한산 차나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정을 쌓았다.
북한에서는 육개장을 '소육개장'이라고 부르는데, 방현수 안내원은 특히 육개장을 참 좋아했다. 그는 가끔씩 물리는 듯하면 냉면을 먹곤 했다. 내가 잘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육개장인데, 언제쯤 내가 직접 만든 육개장을 설경이와 방현수 안내원에게 먹일 수 있을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오늘 늦은 밤에도 어김없이 소육개장을 한 그릇 뚝딱 비운 방현수 안내원이 한마디 한다.
"이모, 이모, 통일이 되면 내가 개 한 마리 잡아 목에 턱 거치고 서울로 찾아갈게.""에그, 징그러워! 나는 개고기 못 먹어. 그리고 나는 미국 살잖아.""개고기가 아니라 '단고기'디. '단고기' 못 먹으면... 기게... 조선사람이 아니디 뭐. 긴데 이모는 통일이 돼도 조국에서 안 살고 미국서 살낀가?"북한도 결혼철은 역시 꽃피는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