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다녀와서 힘들었다는 말 대신 산티아고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랑어린학교
도대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부터 나온 것일까? 사랑어린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8학년까지 모든 아이들은 매일 아침 걷기명상을 합니다. 학교 버스를 타고 적당한 곳에 하차해 시골길과 바닷길, 40분 정도의 거리를 온갖 해찰 다 부리며 걸어서 학교에 도착합니다.
7학년 8학년 아이들은 산티아고 순례 길에 대비해 따로 걷기도 했습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순천에서 고흥까지 이틀 동안 걸어오기도 했으며 나흘간 망월동 국립묘지를 비롯한 광주순례 등을 거쳤습니다. 그렇다하여도 그것도 중학교 1,2학년들이 낯선 스페인에서 800km를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보고 느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놓는 작업을 했습니다. 먼저 각자 길을 걸으며 느꼈던 기행문을 작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음식, 숙소, 걷다가 만난 사람들과 동물들, 성당, 길에서 만난 축제, 쇼핑, 잊을 수 없는 일화 등으로 세분해 스물여섯 꼭지로 나눴습니다. 그것들을 아홉 명이 각자 두 세 꼭지씩 맡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3명씩 당번을 정해 놓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을 지어 먹어가며(사랑어린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직접 밥을 지어 먹습니다.) 일주일 내내 문집 작업에 몰두 했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문집 작업에만 몰두한 것은 아닙니다. 컴퓨터 작업을 기다리면서 빈둥빈둥 만화책에 코를 박거나 당번이 돌아오면 식사 준비를 합니다. 거기다가 햇볕이 쨍쨍하면 집 앞 해변에 나가 신나게 해수욕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문집 작업을 위해 우리 집 작은 도서관에 두 대의 컴퓨터를 설치했습니다. 아이들은 먼저 백지에 원고를 쓰고 나와 함께 약간의 수정 작업을 거쳤습니다. 수정 작업은 최소화 했습니다. 문장이 뒤틀려 있어도 어지간하면 그냥 살려 나갔습니다. 아이들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으면 그만 이니까요. 자칫 아이들의 문장에 손을 대면 몸과 마음으로 쓴 생생한 원고를 훼손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최소한의 수정된 원고가 나오면 번갈아 가며 컴퓨터에 옮겨 담았습니다. 또한 그 원고에 맞게 산티아고에서 찍어온 수 천 장의 사진을 선별하는 작업도 했습니다. 학교 발표회 때 쓰게 될 동영상 사진작업을 병행해 가면서요.
아이들의 원고 작업은 경이로울 만큼 빨랐습니다. A4용지 한두 장을 한 두시간만에 후딱 써 내려가기도 합니다. 나름 글쟁이 농부라는 내가 만약 그 만큼의 분량을 쓰게 되면 하루 종일 걸릴 것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나는 아이들의 글 작업을 보다보면 아이들이 '직시(直視)'하는, 혜안을 도무지 따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의 원고를 검토하면서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중학교 1, 2학년이 쓴 것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글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었습니다. 단순한 지식으로는 쓸 수 없는 지혜로운 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체화된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온 글들이 참 많았습니다.
어떤 글들은 시원찮은 산티아고 순례길 안내서에 뒤지지 않을 만큼 상세하고 생생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글을 통해 산티아고에 다녀온 것처럼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책 한권 이상의 지식과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산티아고에서 찍은 글과 다녀와 쓴 글들을 혼자서 감상하기가 아쉬워 일부분을 짤막하게 소개해 보기로 합니다. 산티아고를 향해 떠난 사랑어린 학교 아이들은 프랑스 시간으로 5월24일 아침 7시 45. 생장 피드포르 부터 걷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