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바다. 큰 아들 인효 녀석이 곰순이를 데리고 나와 인상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송성영
1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학교 기숙사 한 모퉁이에 따로 텃밭을 가꾸고 있다며 기분 좋게 떠벌여 대던 녀석이었는데 1학년 2학기에 들어서부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가 다 돼야 취침을 하는데도 그런 학교가 너무 맘에 든다고 했던 녀석이었는데 말입니다.
녀석이 반항기로 접어들면서 까다로운 학칙을 들먹이며 몇몇 선생님의 눈총까지 받아가며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하고 다녔습니다. 아버지인 내가 보기에도 꼴사나워 보였습니다.
"아이구, 자식이 그 머리... 그거, 너 머리 좀 원상 복귀 하믄 안 되겠냐?""그냥 한번 해 보려구.""그냥? 그려, 그래라 니 머리 니가 알아서 해야지, 니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녀석이 싫증나면 언젠가 머리색을 원상복귀하겠지 싶었습니다. 녀석의 반항은 머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학칙을 어기고 누구 생일, 아이들과 함께 몰래 밤중에 치킨을 사먹었던 일. 묵학 시간(저녁 밥 먹고 오후 10시까지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에 PMP로 영화를 봤던 일. 시험보기 일주일 전에는 외출이 금지돼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교문 밖을 나가 치킨을 사먹었다고 합니다.
학교 앞 다리 밑에서 감자를 구워 먹기 위해 작당을 하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디 이것뿐이었겠습니까? 몇몇 과목을 제외한 학교 수업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학 같은 수업 시간에는 멍 때리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학칙을 중요시 하는 학교에서 골머리 아픈 녀석으로 찍혔을 것입니다(동생 인상이가 풀무학교에 면접시험 보았을 때 네 명의 선생님들 중에 세 명이 학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을 정도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올바름' 속에 널 가뒀구나결국 녀석은 1학년 2학기 때, 방학도 아닌데 일주일 동안 집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녀석이 원한 것이었지만 학칙에 대해 생각 좀 해보라고 학교에서 나름 배려를 해준 것이지요.
녀석이 집에 있는 동안 전에 없이 '진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로 학칙에 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실 녀석이 어긴 학칙은 일반 고등학교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아이들과 한바탕 싸움질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녀석이었기에 몰래 치킨이나 피자를 사먹고, 학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집에 오는 날이 거의 없다보니 금지된 외출을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모르지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학칙을 어겼을지도.
"아빠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풀무고등학교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지켜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너무 심한 거 같어. 사소한 것 같고 전체회의를 열어야 하고... 너무 답답해.""만약에 그 학칙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못된 사람들이라면 그 학칙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너희 학교는 다르잖어. 니 말대로 하나같이 좋은 선생님들이잖어. 거기다가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맘껏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있잖어. 몸은 고될지 몰라도 생각만큼은 자유롭잖어." "그건 그래. 그래도 답답해." "너는 인마 아주 행복한 거여. 일반 고등학교서 공부하는 친구들 생각해봐. 입시에 시달리는 그 친구들 생각하면 이런 불만은 사치여. 그 친구들한티 니가 미안하게 생각해야 혀.""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시간이 너무 빡빡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아빠는 니가 학칙을 어긴 걸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녀. 니들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여. 공동체 생활에서는 너 혼자가 문제가 아녀. 작고 사소한 것을 어기게 되면 자칫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그걸 걱정하시는 거지." "작고 사소한 것까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선생님들도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걸?""암튼 기타 칠 시간이 너무 없어.""묵학 시간에 하믄 안 되냐?""안 돼.""왜 안 돼?""학칙이 그래."기타를 붙들고 그토록 하고 싶은 노래를 할 수 없기에 무척 답답할 것이었습니다. '그런 힘겨움을 이겨내야지만 좋은 노래를 만들어 노래할 수 있다'고 교과서 같은 말을 해주려다가 그만뒀습니다. 1학년 때, 한미FTA 반대 촛불집회 서울 원정, 홍대 앞 놀이터공연을 하기도 했던 당찬 녀석이었지만 '올바른 학칙'에 대한 강요에 힘겨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보약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듯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녀석에 올바른 것만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풀무고등학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성을 키워내는 훌륭한 학교다. 거기에 사소한 학칙이 큰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그 틀을 견뎌내야만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늘 녀석에게 자유롭게 살아가라 말하면서 규정지어 놓은 '올바름'이라는 틀에 가둬 놓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려, 사실 아빠 말에도 한계는 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니가 혼자서도 충분히 자유롭게 좋은 노래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 학교 그만둬도 좋다. 지금 기숙사 생활비로 들어가는 비용을 너한테 다 줄테니께, 그것으로 니 맘대로 해봐라, 기타 들고 홍대 앞을 떠돌아 다녀도 좋고, 그 돈으로 작곡 할 수 있는 음악 장비 구입해 집에서 노래에만 열중해도 좋아, 아니면 그 돈으로 맘껏 여행을 떠나든지, 결국 니가 선택할 문제인 거 같은데?""... 생각해 볼게.""높게 높게 날아서 발 밑 세상을 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