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흘 싹을 틔운 모판을 논 못자리에 옮겼습니다. 가뭄과 잘못 선택한 모판 때문에 거의 모든 모판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송성영
하지만 못자리에 폭과 간격을 맞춰 옮겨놓고 남은 모판이 모두 60여 개나 되었습니다. 그걸 다 논바닥에 뒤엎어버렸습니다. 애초에 2000평에 해당하는 모판을 준비했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가뭄 때문에 도저히 산 아래 천수답에 물을 댈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가 소작을 하고 있는 천수답은 모두 네 개의 다랑이인데 그중에서 두 개의 다랑이를 포기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늘어난 농사일에 글을 써가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바다에 나가 찬거리까지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올해는 아이들과 글쓰기 공부하는 시간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꽉 잡혀 있었습니다. 유기농으로 밭농사 1000평에 논농사 2000평은 천성이 느려터진 내게 무리였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과신이었습니다. 귀농 16년 차. 그동안 조금씩 농사일을 늘려왔습니다. 귀농 첫해는 30여 평의 작은 텃밭으로 시작했습니다. 매년 50평, 100평, 300평, 500평, 1000평 식으로 늘려나가 급기야는 2천 평으로 늘려나갔습니다.
올해는 욕심을 좀 부렸습니다. 작년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났음에도 1000평을 더 늘려 3천 평의 농사를 짓겠다고 작정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평수를 늘리면서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농사가 아니라 자급자족하겠다고 시작한 농사였지만, 통합진보당의 사태가 그렇듯이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고흥에 이사 와서는 바다에 나가 찬거리를 마련하는 동시에 오로지 농사에만 전념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농사짓는 일이 점점 힘에 부쳤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농사일에 매달리게 되면서 부터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그만큼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들이 늘어났습니다.
글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산전수전이라는 연재 타이틀을 걸어놓고 오랫동안 단 한 줄의 원고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바다에 나가 찬거리 낚시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두 개의 다랑이 논을 포기하기로 작심하고 애써 준비한 모판을 뒤엎었던 것입니다. 논바닥에 한 판 한 판 모판을 뒤엎을 때마다 가슴이 쓰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했습니다. 논농사를 줄이는 만큼 아이들에게 좀 더 살갑게 다가가 재미있는 글쓰기 교실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내 자신과 싸워가며 두 눈 질끈 감고 모판을 뒤엎었지만 통합진보당 내부갈등은 여전히 극에 치닫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역시 내부 갈등 속에서 한바탕 가슴 쓰린 '뒤집어 엎기'를 통해 제 자리를 찾아 갈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극심해져 가는 통합진보당의 내부 갈등처럼 '모판 뒤집기'는 가뭄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못자리에서 어린 벼가 자라지 않고 바싹 말라버린 것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새로 구입한 모판 때문이었습니다. 새로 구입한 모판은 그 바닥에 물구멍이 적게 뚫린, 육묘실에서 모판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놓고 물을 줘서 키우는 모판이었던 것입니다. 그 모판으로 논 못자리를 하기 위해서는 물을 높게 잡아야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