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단배과거 화천 사람들은 돛단배나, 쪽배, 뗏목을 타고 서울까지 왕래했다.
신광태
지난 7월 28일 오후 8시 화천 쪽배는 여는 마당인 낭천별곡을 시작으로 16일간의 일정으로 대장정의 항해를 시작했다. 강수욕장, 레저카약, 수상자전거, 하늘 가르기 등 30여개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쪽배축제는 오는 8월12일까지 16일간의 일정으로 운영된다.
화천 쪽배축제는?
화천은 신라시대 때 이리가 많은 동네라 하여 낭천((狼川)이라 불렀다. 아침이면 강변으로 많은 이리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내려오는 것이 목격되면서 동네 이름을 낭천으로 부르다가 조선 고종때 물이 빛나는 동네라는 뜻의 화천(華川)으로 변경되었다.
과거 육로가 없던 시절, 화천 사람들의 한양까지의 유일한 교통로는 수로였다. 뗏목이나 쪽배를 만들어 수로를 따라 서울 마포나루까지 장작을 싣고 나가 소금이나 옷가지 등 생활용품을 사오곤 했다.
애환도 많았다. 뗏목이나 쪽배가 이동하는 물길은 큰 장마가 지면 지형이 바뀌고 물살이 사나워 한양으로 올라가는 물길은 늘 목숨을 담보한 모험이었다. 그러다보니 가장을 한양으로 떠나보낸 아낙들은 안전 제를 지내기도 하고 산신이나 용왕기도를 올리곤 했다. 그때 만들어진 소리가 쪽배축제 첫날, 여는 마당을 통해 공연으로 승화시킨 낭천 별곡이다.
한양까지 뱃길을 따라 올라가는 기간만 삼사일은 족히 걸렸다. 따라서 늘 쪽배나 뗏목에는 봇짐 외에 음식물도 함께 싣고, 무료함도 달래고 급류에 배가 뒤집혀졌을 때를 대비해 3~4명이 같이 탔다.
낭만도 있었다. 뱃길을 따라 형성된 주막은 이들 뗏목꾼들이 들르는 필수코스였다. 막걸리 한잔에 포주와 농담을 주고받다 보면 하루 종일 노를 저으며 쌓인 피로가 해소됐다. 그래서인지 북한강변에는 주막 터가 심심찮게 발견되기도 한다.
과거 산촌 마을에는 소금이 귀했다. 그래서 역으로 강을 거슬러 소금을 파는 상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큰 배에 소금을 싣고 한양에서 출발해 화천에 닻을 내리고 곡식이나 땔나무 등으로 바꾸어가곤 했다. 화천에 소금 배가 오는 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야말로 한마당잔치가 열리곤 했다. 이를 재조명해 문화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냉경지 소금 배 오는 날' 이란 민속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