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삼거리 픽쳐스
현행법은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그리고 아동·청소년 대상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제외하고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성폭행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친고 규정과 더불어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이 규정은 금전과 권력을 무기 삼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남성이 여성을, 성인이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아동과 장애인 대상으로만 비친고죄화한 규정을 모든 성폭행에 적용해서 제3자도 고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심지어 이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지닌 일본조차 100년간 유지되어 온 성폭력 친고규정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에서도 이미 2002년 여론조사에서 국민 93%이상이 강간 친고죄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 이상, 이를 더 유지할 이유가 없다.
지난해 정부가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장애인 대상 성범죄의 친고규정을 폐지한 것처럼('도가니법'), 모든 성폭력을 비친고죄화도록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강간죄 적용을 '저항'이 아닌 여성의 '적극적 동의 여부' 로 바꿔야 한다. 대다수의 인권국처럼 '저항하지 않으면 합의'가 아니라, '여성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으면 성폭행'이라는 포괄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그리고 더 위험해지고 있는) 성폭력 국가 중 하나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사는 국민들이 불행하기 때문에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이처럼 성범죄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경사법기관의 인식 변화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보여주듯,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남성 중심의 왜곡된 가치관과 성의식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범죄 피해자들이 재판 결과는 물론, 수사 과정에서도 큰 고통을 겪는다. 실제로 '여성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의 원인'이라고 믿는 남성 법관들이 여성 법관에 비해 두 배나 많은 게 현실이다.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과 인권교육이 시급함을 말해준다.
가장 중요한 건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사회 그러나 법이나 법관들의 인식 변화는 대체로 이미 일어난 범죄에 대한 것이다. 물론 엄격한 법집행이 범죄를 예방하는 데 기여하지만, 언제까지 '경고'를 통한 수동적 예방일 수밖에 없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에게 혜택을 돌리는 지름길이다.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 행복한 나라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통영 초등생 살인사건은 제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어린 목숨을 희생시킨 개인 못지 않게, 굶주린 상태에서 아무에게나 끼니를 구걸해야 했던 어린이를 방치한 국가의 책임도 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열살 소녀는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정당은 아이들에게 밥 한끼 먹이는 것 가지고 '좌파'니, '포퓰리즘'이니 한심한 논쟁을 벌이는 일부터 그만 두어야 한다. '보편복지'니 '선별복지'니 하는 논란도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부자 아이들에게 왜 공짜 밥을 주냐'는 질문이 '부자에게 왜 서민 밥을 먹이냐'라는 항변이 아니라면, 같이 먹이고 부자에게 그 몫만큼 더 세금을 내게 하면 된다.
세계 경제력 10위권에, 전 세계에 최첨단 제품을 파는 나라에서 아이들이 굶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들의 삶을 지켜줄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성장하고 무엇을 위해 발전하는가. 교육도 그렇다. 옆에서 남이 굶고 있는데 제 입에 밥을 꾸역꾸역 쑤셔 넣는 '글로벌 인재'를 길러 무엇 하는가. 사실 한국사회는 남의 고통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고통을 이용해 제 욕심을 채우도록 가르친다.
가정도 그렇다. 우리는 밀양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서 고려대 성추행 사건까지 부모가 어떻게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이중, 삼중으로 괴롭히는지를 보았다. 워너와 워싱턴 같은 사회학자들의 연구가 보여주듯, 자식의 성별은 부모의 사회문제 문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아들을 둔 사람이 보수적 선택을 하고, 딸 둔 부모가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진보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아들로 태어난 사람과 아들을 둔 부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 편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 아이의 주린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지금, 우리는 모두 딸을 둔 부모다. 쉽게 '애도'를 말하지 마라. 애도 대신 분노할 때다. 이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이제까지 침묵해 왔고 이 사건을 곧 잊을 자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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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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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소녀의 죽음, 한 남자의 단독범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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