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글, 사진 - 휴먼앤북스
휴먼앤북스
작년에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떠났을 때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닷가를 달리다가 우연히 제주의 속살이라는 내륙의 중산간 길에 들어선 적이 있었다.
바다와 달리 들판은 그 위를 직접 달려갈 수 있어서 그런지 무척 이채로운 기분이 들고 중산간녘 들판에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주위에 느낌이 저마다 다른 크고 작은 오름들이 솟아 있고 신령스럽게 들려오는 까마귀들을 울음소리, 부는 바람에 억새들이 춤추는 원초적인 풍경. 저자가 느낀 감동과 끌림에 공감 가는 장면들이다.
이렇게 한껏 평화로운 들판의 풍경은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 깊은 외로움을 전해주기도 한다. 평화와 외로움, 전혀 다른 느낌의 말이지만 저자에겐 숙명과도 같은 대상이요 사진재료가 되었다. 외롭고 허무한 세상살이를 잊기 위해 그는 미친 듯이 사진 하나에만 몰입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어디에도 얽매임 없이 사진을 찍는 하루하루는 자유롭고 평화로웠다.
그런 저자를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도 처음에 진정한 자유는 혼자일 때만 가능하다는 생각에 섬 속의 섬 마라도에서 혼자 지내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을 견디기 힘들었으며 그 후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은 체념했단다. 그를 도통한 구도자급 사진가로 여겼는데 나처럼 외로움과 고독에 약한 평범한 인간이었구나. 책 맨 뒤에 약력과 함께 나오는 그의 얼굴 사진을 들춰보게 된다.
그가 찾던 파랑새는 무엇이었을까!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이어도'다.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이어도를 나는 보았다. 제주 사람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호흡 곤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나는 이어도를 만나곤 한다." (본문 가운데)"밥벌이 안 되는 일을 언제까지 할꺼꽈? 시내 나강 사진관 하믄 돈 벌 텐데. 모두들 떠나지 못행 안달인 촌구석이 무사 좋앙 눌러앉앙 살암신지 이해하지 못하꾸다."제주도에 이사를 와 살게 되면서 저자가 동네 사람들에게 주로 듣던 동정과 타박이 섞인 말이다. 그런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꿍쳐둔 돈을 톡톡 털어 제주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가졌다. 아마도 과시나 누구를 위한 전시회가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게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면서도 동이 트기 전 20킬로그램이 넘는 사진 장비를 둘러메고 온종일 들녘을 해매 다니고, 집으로 돌아와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생활을 이십 년 넘게 반복하다가 결국엔 치명적인 병까지 얻어가면서 과연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함이 책장을 넘기면서 모락모락 떠오른다.
춥고 배고팠던 나머지 그때는 몰랐다고 저자는 말한다. 파랑새를 품 안에 끌어안고도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단다. 등에 업은 아기를 삼 년이나 찾아다녔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라 한다. 오랜 시간 내공을 쌓아온 구도자의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