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정상회담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공동선언에 함의하고 두 손을 맞잡고 축하하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12년 전, 새천년 첫해에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북연합제 통일방안, 이산가족상봉, 경제협력 등 제반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선언했다. 우리 분단사에 길이 남을 날이었다. 그러나 남과 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사진의 빛이 바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금강산 관광은 이제 '추억'이 돼가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도 한바탕 꿈이 돼버렸다. 그나마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북한 핵실험, 김정은 체제 등장 등 정치·군사적 사건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개성공단이 대견하다. 그러나 개성공단도 내부는 곪아가고 활기를 잃고 있다고 한다. 열렸던 바닷길, 하늘길은 닫힌 지 오래다. 철도도 끊어졌다.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 놓은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기만 해도 '실용주의'를 내걸며 6·15와 10·4선언을 이어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금강산에서 남측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후 강경노선으로 일관했다. 경제·정치·사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과거 '대결 시대'로 돌아갔다. 실용은 온데간데 없고 이념만이 판을 쳤다. 자신들은 원칙을 지켰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북측이 남측 영토를 포격하는 사태를 가져온 정부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청와대 벙커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은 불안해 했고, 평화를 외쳤다.
우리는 자신의 확신이나 이념이 나침반이 되기는커녕 현실을 왜곡·외면하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촘촘한 잣대를 가지고 현실을 재단할 줄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런 지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념에 사로잡힌 확신범이었다.
'종북 선동' 중단 없이 남북관계 개선 없다최근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종북 선동'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보수세력에게 종북 원조는 '김대중'과 '6·15공동선언'이었다. 1970년 이후 지난 40여 년 동안 평화통일을 주장한 김대중은 '빨갱이' '좌익'이었고, 6·15공동선언은 폐기돼야 할 '이적문서'였다.
지금의 무차별적인 종북 선동은 남북화해협력 세력 전체를 향하고 있다. 정치권의 부정경선에서 시작한 논란은 국회의원 사상검증으로 전환되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까지 이 논란에 가세하면서 확산됐다. 6·15의 계승을 이야기하고, 통일이니, 남북 화해협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 '종북주의자'가 될 판이다. 그들은 지금 전국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는 6·15 남북공동선언 행사를 '종북주의자들의 잔치판'으로 여긴다. 한국판 매카시즘이 재현되고 있다. 종북 논란을 하루속히 매듭짓지 않고는 남북관계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을 진전시키기는 어렵다.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이 종북 선동으로 연말 대선을 치르려고 하는 것은 오판이다. 과거의 대북대결 선동, 즉 '북풍'은 최근 여러 선거에서 보듯 국민들을 움직이지 못한다. 과거에는 통했지만,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풍이 불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화해와 협력이 가져다준 평화의 가치, 평화의 이득을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고, 이것을 훼손하려는 정치적 의도에는 반대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종북 선동의 연장선 상에서, 그리고 이명박 시대의 대를 이어 남북대결 정책을 내세운다면 이번 대선에서 얻을 이익은 없다.
민주통합당과 야권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총선에서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 3대 의제를 내걸고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파탄, 6자회담 외교실패, 일상화된 무력충돌 위협 상황에서도 한반도 평화 의제를 정치적 이슈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이번 총선처럼 민족 문제가 실종된 선거도 없었다.
남북관계 6·15로 돌아가 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