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일제히 치러지는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앞두고 2010년 7월 9일 저녁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소속 학생들이 일제고사 반대를 주장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한국에서 '창의교육'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언제부턴가 이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는 꽤 오래 전인 2009년에도 이런 말을 했다.
"경제위기 이후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는 창의적 인재 육성이 가장 중요하다."
3년이 흐른 지금, 그는 자신이 밀어붙인 교육정책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올 3월 '교육기부공동체 선포식'에서 행한 연설이 실마리를 준다. 이 대통령은 현재 학교 교육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의로운 교육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지금은 주입식이나 교과서적 교육만 갖고는 안 되고 지식도 융합하고 과학과 예술을 합친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체 무엇을 보고 듣기에 이런 말을 할까? 드러난 현실이나 객관적 지표와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5일 공개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를 보자. 포괄적 내용이 담긴 이 자료는 '이명박표 교육정책'의 참담한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평가항목 10가지 가운데 무려 9가지가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한 창의력과 예술적 능력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여기에 언어능력, 자기성찰능력, 대인관계능력, 자연친화력, 신체·운동능력, 손재능, 공간·시각능력 등 9가지 항목 모두가 10년 전보다 퇴보했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인 셈이다.
뒷걸음 치지 않은 유일한 영역은 수리·논리력 하나 뿐이다. 하지만 폭등한 사교육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총체적 실패라는 낙인을 면할 수 없다. 10년 전에 비해 중학생 주당 평균 사교육 시간은 남학생은 71분에서 107분으로 늘었고, 여학생은 48분에서 101분으로 배 이상 뛰었다. 보고서는 대폭 늘어난 중고교 사교육 시간을 지적한 후, 다음 같이 결론을 내린다.
"우리 교육이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소질과 적성 개발, 전인적이며 창의적인 인재교육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인지적인 능력이 강조되고 경쟁이 심화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사람 잡는 교육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평가 지표로 드러나지 않는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한두 해도 아니고, 이명박 정권 4년 내내 굳건히 꼴찌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노무현 정권' 탓을 할 것 같아 덧붙이자면, 한국 젊은이들은 이명박 정권 이후 확실히 더 불행해졌다.
여성가족부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통계'를 보자. 자살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은 2008년 214명에서 2010년 476명으로 갑절 이상 뛰었다. 중학생은 256명에서 2010년 627명으로 2.5배 가까이 증가했고, 초등학생은 37명에서 99명으로 무려 2.6배나 늘었다.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 중 '성적과 진학에 대한 고민'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현 정부의 가혹하고 무책임한 교육정책이 어린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현정부 4년 내내 자살은 청소년 사망원인 가운데 단연 1위였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에 자살한 청소년은 교통사고, 암,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청소년들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어린이들조차 10명 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끼며 산다. 오죽하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마저 한국 아동·청소년의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어린이날에 청와대에 아이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북한은 말 안 듣는 나쁜 어린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바쁜 어린이들을 불러내어 (아이들이 왜 바쁜지는 대통령이 더 잘 알 것이다) 철 지난 반공교육을 하기에 앞서, 현 정부만 아니었다면 살아 있을 어린 영혼들에게 사죄부터 했어야 옳다. '나쁜 어른'들의 탐욕과 무지가 어린 학생들을 건물 난간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교육의 병폐를 분석하면서 한국을 '한 방 사회(one-shot society)'라 불렀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판가름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시험 한 번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한 방 사회'에 대비하는 시점이 고등학교에서 초등학교나 유치원으로 내려 갔고, 대학에 합격해도 공부에 전념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입학하자 마자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 하고, 졸업을 앞두고는 '자소서 뽀개기'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 경쟁력이 생긴다면 '기적'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글로벌 인재'의 허상 21세기 한국 교육의 '키워드'는 '글로벌 인재'일 것이다. 근사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