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가문의 자녀. 사진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유적지(정약용 유적지)의 유리관 속 모형.
김종성
조기교육은 왕실뿐만 아니라, 사대부라 불린 특권층 가문에서도 실시되었다. 왕실보다는 못했겠지만, 특권층 가문의 조기교육도 오늘날의 조기교육을 뺨치는 수준이었다.
조선시대 민담집인 <금계필담>에는 철학자 김시습이 다섯 살 때 삼각산에 관한 시를 지어 세종을 감탄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19세기 중후반의 선각자인 박규수의 문집 <환재집>에 따르면, 박규수는 일곱 살 때 공자의 <논어>를 읽고 그것을 모방한 문장을 지었다고 한다. 유사한 사례들을 조선시대 기록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다섯 살짜리가 시를 지었다는 사실과 일곱 살짜리가 <논어>를 읽었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다섯 살짜리가 '훌륭한' 시를 지었다는 사실과 일곱 살짜리가 <논어>를 흉내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다섯 살짜리가 시를 짓는 것과 일곱 살짜리가 유교경전을 읽는 것 자체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웬만한 사대부 가문에서는 다들 그렇게 자녀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술자리나 모임에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근사하게 보이지만, 멋진 시를 술술 낭송하는 사람도 꽤 근사하게 보인다. 유명한 시나 시조를 낭송하면 사람 자체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왕족이나 사대부들은 어려서부터 시를 짓고 암송하는 훈련을 받았다. 이랬으니, 이들이 서민들과 얼마나 다르게 보였을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조선시대 지배층은 어려서부터 시뿐만 아니라 경전까지 줄줄 외우고 거기에다가 도덕교육까지 철저히 받았다. 이런 조기교육을 통해 그들은 아랫사람들의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들로 성장해 나갔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조선시대 지배층은 자신들의 지배가 '경제력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인격과 지식에 의한 지배'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서민들이 지배층의 권위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옥탑방 왕세자>에 나오는 이각과 3인방의 상하관계는, 지배층의 지배를 당연시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시대 지배층은 상당히 세련된, 아니 매우 '교활한' 집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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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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