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밭 한 옆에 자라고 있는 무꽃. 지리산에서 구한 토종 무씨를 5년째 받아 쓰고 있습니다.
송성영
"저게 풀밭이지, 밭이라 할 수 있것소이?"문득 수없이 많은 씨앗을 잉태하는 한 포기의 배추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겨우내 김장김치를 내주고, 겨울을 견뎌내 달콤한 봄동으로, 거기에 봄꽃에 이르기까지 죄다 내주고 있습니다. 벌들을 불러들이고 사람들을 불러들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줍니다. 그게 어디 배추꽃뿐이겠습니까?
우리 집 주변은 요즘 온통 푸릅니다. 그 사이 사이에 앙증스럽게 핀 별꽃을 비롯한 온갖 풀꽃들과 노란 배추꽃이 더해졌습니다. 연보라 꽃도 보입니다. 무꽃입니다. 배추꽃과 무꽃이 시들 무렵에는 씨를 맺게 될 것입니다.
밭고랑 사이사이에는 안개꽃처럼 자욱하게 피어 있는 냉이꽃이 보입니다. 벌써 꽃잎을 날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틈실한 씨앗들이 밭 곳곳에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지난겨울에도 그랬듯이 향긋한 냉잇국으로 우리 식탁 앞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여전히 "저게 풀밭이지, 밭이라 할 수 있것소이?"라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밭을 자세히 살펴보면 풀꽃과 냉이꽃 사이에서 마늘이 끄떡없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겨울을 난 양파와 상추는 이미 잘 자라고 있고 3월부터 파종을 해온 감자와 취나물, 청경채, 케일, 고수를 비롯한 갖가지 채소류가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 밭을 보면서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쉽니다. 심란하다고 합니다. 어지럽다고 합니다. 밭에서는 농작물만이 자라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밭에서 꽃이 핀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꽃이 피기 전에 밭을 갈아엎어 그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밭을 계속 활용해야 합니다. 밭을 한시라도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밭에도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 땅은 좀 더 많은 작물을 생산해내야 하는 거대한 자본의 기계나 다름없습니다. 기계를 작동하는 것처럼 필요한 뭔가를 끊임없이 뽑아내야 합니다. 생명은 자라지만 진정한 생명이 없습니다. 꽃을 피우고 씨를 잉태하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