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리 소나무숲. 이 멋진 숲이 이제 잔디밭으로 바뀔 위기에 놓여 있다.
녹색연합
구정리의 소나무숲은 '소나무'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를 가졌다. 그 가치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조승진씨는 골프장 예정지 내의 소나무는 대략 6만여 주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씨는 강릉시 내 조경업자에게 문의한 결과, "이곳 소나무들의 가격이 한 그루에 대략 150만 원에서 200만 원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그 계산대로 하면, 이곳의 전체 소나무 가격은 천억 원대에 가깝다. 그런데 동해임산이 구정리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하는 데 투입하는 총사업비가 딱 1058억 원이다. 그러다 보니 강릉시 시민들 사이에서는 소나무값만으로 골프장 하나를 짓고도 남는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물론 이 말은 소나무 전체를 제값을 받고 다 팔았을 때 가능한 얘기다.
동해임산은 한때 소나무 가격 문제로 논란이 일자, 구정리 소나무들은 골프장 조경에 쓰겠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소나무를 골프장 조경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동해임산은 공사가 본격화되면, 숲에서 뿌리째 굴취한 소나무들을 어디론가 반출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강원도, 그것도 소나무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강릉시에서 소나무는 결코 가볍게 다룰 대상이 아니다. 강릉시는 한때 이곳의 소나무숲을 그대로 보전해 '치유의 숲'으로 가꿀 계획이었다. 그 계획대로였다면, 구정리 소나무숲은 '솔향 강릉'을 구체화하는 숲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계획이 어느 순간, 골프장 유치 사업으로 바뀌었다.
강릉시청에 최명희 시장이 들어서고 나서 이런 식으로 파괴된 소나무숲이 여의도 면적의 2배나 된다는 보도(<시사IN> 206호)도 있었다. 소나무 굴취 사업이 돈이 되는 사업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소나무를 매개로 거액의 돈이 오가다 보니, 강릉시에서는 소나무와 관련한 비리로 고위 공무원들이 옷을 벗거나 구속이 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동해임산에서 강릉CC 골프장 건설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고병식 본부장은 한때 최명희 강릉시장의 선거 회계 책임자로 일했던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한때 최명희 시장의 핵심 측근이었던 사람이 이 골프장 사업의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도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기다려달라"는 말, 그 말에 자꾸 뒤통수 맞는 주민들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구정리 주민들은 이제 강릉시청과 강원도청의 공무원들을 상대하는 일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편에 있지 않고 알게 모르게 사업자 편에 서 있는 걸 보면서 진저리를 치고 있다. 그런 마당에 강릉시장을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고, 지난해 4·17 재보궐 선거를 통해 새로 강원도 행정을 책임지게 된 최문순 도지사를 만나고 나서도 애초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주민들은 선거가 끝난 뒤, 최문순 도지사로부터 '자신이 도지사로 있는 이상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새로 골프장 허가를 내주는 일은 없다'는 약속을 받아 놓았다. 하지만 지난 해 11월 3일, 이틀 전 도청에서 마지막으로 실시계획인가를 내주면서 구정리 골프장이 최종적으로 허가가 떨어진 것을 알고 나서는 심한 배신감에 젖었다.
강원도청은 나중에 이 사안을 담당 과장이 전결로 처리하는 바람에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담당 과장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드러나 있지 않은 사안을 가지고 결재를 계속 미룰 수만은 없었다고 했고, 도청은 결과적으로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 당황했다.
그 일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떠나서 주민들은 심한 허탈감에 빠졌다. 주민들로선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셈이었다. 그동안 골프장 건설을 막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강릉시와 싸워온 일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에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11월 5일 주민 60여 명이 도청을 항의 방문했다. 하지만 도지사는 만나지 못하고 주민 5명만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