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의 최충헌(주현 분).
MBC
프로이드는 <정신분석 입문>에서 결혼식 시각을 깜빡 하고 교회 대신 실험실로 직행한 어느 유명한 화학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때문에 결혼식은 엉망이 되었고, 결국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프로이드는 결혼식을 망각한 사건이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될 운명의 전조(前兆)였다고 해석했다. 독신(A)을 희망하는 내면 심리가 '결혼식 깜빡'(B)이란 사건으로 나타났으니, B를 통해 A의 조짐을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주인의 애첩을 건드린 김준의 행동을 또 다른 일의 전조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잠시 후 소개될 것이다.
생의 의지와 능력이 출중한 인물은 웬만해서는 죽지도 않는다. 그런 인물을 꼭 죽여야 하는 데도, 자기 옆에 두고 싶은 욕심에, 죽일 때를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 최우도 그런 실수를 범했다. 최우는 김준을 도로 불러들였다. 기회를 다시 잡은 김준은 프로이드가 말한 '전조'의 완성을 위해 더욱 더 치열한 삶을 살았다.
김준의 영향력은 최우의 아들이자 무사정권의 일곱 번째 지도자인 최항 때에 한층 더 막강해졌다. 최항이 권력을 잡는 데 그가 킹메이커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항의 아들이자 여덟 번째 지도자인 최의는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준과 최의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왕후장상의 두 번째인 '후'까지 오른 김준1258년, 위기의식을 느낀 김준은 주인에 대한 반역을 단행했다. 최의를 죽이고 직접 실권을 잡은 것이다. 최씨 정권이 근 30년간 몽골제국과 투쟁하는 혼란기를 틈타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고 무사정권의 아홉 번째 지도자가 된 것이다.
이로써, 주인의 애첩을 건드린 김준의 행위 저변에 어떤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는지 명확히 드러났다. 그는 처음부터 주인의 것을 탐냈고, 그것을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김준의 능력을 활용하고 싶은 욕심에 그의 과오를 묵인한 최씨 집안은 결국 자기 집 사냥개에 물려죽는 꼴이 되고 말았다.
쿠데타 당시 김준이 왕정복고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쿠데타 이후로도 실권은 여전히 무사들의 손에 있었다. 무사정권의 지도자가 최씨에서 김준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후 김준은 형식적으로는 왕후장상의 두 번째인 '후'까지 올라갔지만, 실질적으로는 '왕'까지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실질적인 정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막부 쇼군 즉 무사정권 지도자와 일왕(소위 '천황')이 공존했던 1185~1868년의 일본처럼, 무사정권 시절의 고려는 사실상 2개의 정부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무사정권의 최고기구인 중방·교정도감·정방 등이 기존의 정부와 공존했던 것이다. 박정희 쿠데타 이후 대한민국정부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공존했던 사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준을 비롯한 무사정권 지도자들은 단순한 실권자가 아니라 실질적인 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형식적인 왕을 떠받드는 실질적인 왕이었다. 노비 김준이 이만한 지위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실로 경이적인 일이다.
김준을 통해 어느 정도 이뤄진 진승과 만적의 꿈한국 역사에서 노비 출신이 형식적 의미의 왕이 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무사정권 시절의 김준·이의민처럼 노비 출신이 실질적 의미의 왕이 된 사례만 있을 뿐이다. 그만큼 과거의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신분상승이 매우 힘든 나라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니, 진승과 만적의 꿈이 김준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준은 진승과 만적의 꿈을 절반만 성취한 셈이 되고 말았다. 진승과 만적은 서민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지만, 김준은 그런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는 기존의 왕조와 왕실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럴지라도, 김준의 삶은 대단한 성공 스토리의 소재가 될 만하다. 노비로 태어나 오로지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출세를 이룩하고 결국 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았으니, 한국 역사에서 이만한 개인적 성취를 이룬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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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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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애첩 건드리고도 승승장구...이 노비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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