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유성호
정 전 사장이 이 글을 쓴 계기는 40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같은 현상이 MBC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11월 하순 무렵,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처리에 반발한 시민들의 시위현장을 취재하던 MBC 기자와 카메라 기자들이 현장에서 시위대들로부터 욕설과 함께 취재거부를 당한 것입니다.
이유는 MBC가 현 시국상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극한 이념대립을 보이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진보매체 기자들은 보수단체 집회에서, 반대로 보수매체 기자들은 촛불집회 등 진보단체 집회에서 취재거부를 당한 적은 더러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MBC를 향한 시민들의 비난이나 취재거부는 그 수준을 넘고 있습니다. 이성재 MBC 카메라 기자는 MBC 인트라넷 '자유발언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지난 25일(작년 11월 25일) 취재한 선후배들이 가져갔던 카메라가 밀쳐지고 트라이포드는 걷어차였다"며 "이제 우리 몸이 걷어차이고 맞는 일만 남았다"고 개탄했습니다.
이 기자는 또 "MBC 로고가 새겨진 ENG카메라를 들고는 도저히 취재가 불가능해 아예 로고가 없는 6mm 소형캠코더를 들고 가서야 근접 취재가 가능했고, MBC 차량은 시민들의 항의 때문에 근처에 주차하지도 못해 아예 시청에 숨어(주차)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기자 글에 현아무개 카메라 기자도 답글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는데, 그의 입에선 '자조'와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최근 취재현장을 가면) 카메라 뒤에서 들려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하나같이 정곡을 찔러 옵니다. '식충이들 밥벌이 하러 왔나?'라는 말에는 도저히 변명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MBC에, 그토록 바라던 카메라 기자가 되어 최소한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왔는데, 구악질을 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MBC 카메라를 지니고 있는 제가 부끄러워질까요? 자조 섞인 한숨만 계속 내쉽니다. 5공 때처럼 이제 대놓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나의, 우리의 MBC가 변해가는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 아무 말도 못하고 지내는 현실이 너무도 개탄스러웠을 것입니다.신문사를 제 집 드나들 듯 한 보안사·안기부 요원들MBC 기자들이 취재거부를 당하는 것은 1987년 이후 25년 만의 일인데 거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용마 기자의 '고백'을 들어보면, MBC는 청와대 내곡동 사저, 10·26 보궐선거, 한미FTA 날치기, < PD수첩 > 판결, 반값 등록금 문제, KBS 도청의혹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김재철 사장이 '투입'된 뒤부터는 정권의 압력에 굴종했던 과거로 퇴행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자들은 한직으로 내쫓겼으며, <100분토론>은 자정 이후 시간대로 밀려났고, <뉴스 후>는 폐지되었습니다. 또 MBC의 간판프로인 < PD수첩 > 역시 솎아내기 인사와 잦은 아이템 검열로 무력화되었습니다.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언론은 수차례에 걸쳐 탄압과 굴종을 강요당했습니다. 그에 저항하는 언론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에 끌려가 두들겨맞거나 아니면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언론사 통폐합, 언론인 강제해직 등 사상 유례 없는 언론탄압을 자행한 5공화국 말기의 일입니다.
당시 보안사(현 기무사 전신)나 안기부 요원들은 신문사나 방송사를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하면서 신문사 편집국의 동향을 체크하고 기자들을 감시하였습니다(압력의 강도나 방식은 다르지만 제가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하던 2000년대 중반에도 국정원 '조정관'들이 언론사를 출입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수시로 간부들을 만나 압력을 넣기도 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를 참다 못한 몇몇 신문사 기자들이 편집국 입구에 팻말을 하나 써서 붙였습니다.
'기관원 출입금지'.기자가 취재원들로부터 불신을 당해 취재현장(혹은 출입처)에서 취재거부를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기자들이 특정 외부인의 신문사 출입을 금지시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거부 대상은 다르지만 누군가를 '출입금지' 시킨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과 개는 출입금지" 간판... 이토 통감 죽자 '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