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
권우성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설립된 지 10년이 되었다.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법(이하 인권위법)이 발효될 때 인권위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였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 인권위 설립을 둘러싸고 정부와 시민사회 간에 첨예한 갈등이 수년 간 계속되었고, 마침내 그 갈등을 딛고 일어선 인권위였기 때문에 그 기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오늘, 인권위는 설립 당시의 목표에 얼마나 다가갔는가. 한국의 인권상황 개선에 어떤 유의미한 성과를 냈는가. 인권위의 운영과 관련되어 어떤 한계가 노정되었는가. 만일 한계가 있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의 전망은 무엇인가. 인권위 설립 10년을 맞이하면서 냉철히 점검해야 할 사항들이다.
이러한 점검은 인권위가 설립된 이후 3번의 정권을 경험하였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처음 두 정권과 현재의 정권 하에서의 인권위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인권위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상대적 호황을 누리다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절대적 불황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권위가 걸어온 길에 대하여 정확한 점검을 하지 않고 또 다른 10년을 맞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인권위는 그것이 비록 권력기관이 아니라도 이 나라의 인권증진에 의미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인권위가 다른 국가기관과 비교하여 똑같은 것이라면,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설립과정에서 법무부의 인권위 법안에 대항하면서 독립적인 인권기구의 설립을 부르짖으며 풍찬노숙의 고난의 길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권위 정책권고, 실효적인가권고기관인 인권위의 기능 중 정책권고는 인권위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이유로 인권위의 기능을 열거한 인권위법 제19조는 인권과 관련된 법령 및 제도의 개선을 위한 권고를 인권위의 첫 번째 기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근거에 따라 지난 10년간 인권위가 정책권고를 한 것은 총 270여 건에 달한다. 한 해에 평균 30여 건에 달하는 수치다. 따라서 이 많은 정책권고를 짧은 지면에 적절히 평가할 수는 없다. 통시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통시적 평가에서 우선 해볼 수 있는 것은 이들 권고의 실효성을 나타내는 해당기관 수용률을 점검하는 것이다. 10년간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해 보니 인권위가 발표한 정책권고를 관계 기관이 그대로 수용한 수용률은 27%, 일부수용까지를 합한 수용률은 57%이다. 그런데 이런 수용률은 기간별로 특징적인 현상을 볼 수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시기라고 할 수 있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연 평균 74% 정도의 수용률(일부수용 포함)인데 반해 그 이후부터 최근까지(2011년 9월 말)는 연 평균 30%로 급격히 떨어진다.
정책 권고에서 70% 이상 수용률을 보인다는 것은 매우 높은 것으로, 이는 관련기관이 인권위 권고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수용률이 30%대로 떨어졌다는 것은 인권위의 권고가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제대로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권고 수용률의 저하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인권위가 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대우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사실 인권위의 인권정책의 실효성은 수용률로서 대체로 추정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관련 국가기관에서 인권정책과 관련된 결정을 할 때 그 원인이 인권위의 권고에 의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 관련 법령만 보더라도 그것이 개폐되는 데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다. 인권위의 권고는 그 중의 하나에 원인에 불과할 때가 많다.
따라서 인권위의 권고 수용률이라는 수치에 너무 큰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권고의 방향성이다. 정책권고의 내용이나 수준이 향후의 인권개선을 위한 분명한 기준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그 권고가 바로 수용되지 않아도 인권위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해야 한다.
인권위 정책권고의 수용률은 그동안 정권교체에 따른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인권위의 권고가 다른 국가기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권위가 비록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비틀거리고 있지만 지난 10년간 법무부, 검찰, 경찰 등에 대하여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해 영향을 미쳐 왔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평가는 냉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위 인권정책권고 Best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