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경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위원장 표창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권우성
무엇보다 개탄스러운 현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앞장서서 취임 이전부터 줄기차게 인권위의 역할과 위상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뇌며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삼권분립의 미명하에 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하는 정부조직개편을 시도하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한 바 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통해 21%에 이르는 조직축소를 단행, 인권위 역할과 기능을 마비시키기에 이른다. 결정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인권 문외한이었던 현병철을 위원장 자리에 앉히고서는 '인권'이 아닌 정권의 '안위'만을 고려하는 정부기관의 '일개 장'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등 보수집권세력은 끊임없이 인권위의 역할과 기능을 훼손해 현재의 지경까지 이르게 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인권위는 '표현의 자유 후퇴', '비정규직 문제', '뉴타운개발 등 무분별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강제철거와 주거문제', '빈곤문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및 파업', '무상급식·반값등록금 등 교육복지 문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로 인한 평화적 생존권 침해' 등 현안이 되고 있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외면하거나 손을 놓고 있거나, 시의적절한 대처와 개입을 못하고 있다. 인권위는 더 이상은 우리사회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인권위의 4대 기능 중 하나인 국내·외 협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해, 명실공히 인권위와 인권NGO와의 거버넌스(협치)가 붕괴되었다고 하겠다.
반면에 인권위는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충실히 따르기 위해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거나 '북한인권' 문제만을 다루는 '대북인권단체'와의 협력만을 확대하는 듯하다. 다만, 인권위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무한반복되고 있는 경찰 및 군대 가혹·폭력행위 문제나 장애차별 문제의 개입에서처럼 일부 영역에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해결보다는 적당히 발 담그는 '알리바이 인권기구'의 활동에 자족하는 듯하다.
이같은 인권위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그 책임을 온전하게 보수집권세력에만 지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잘 운영되던 인권위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갑자기 그 역할과 기능이 위축되고 급기야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것일까?
인권위원의 구성과 문제점인권위 법제 가운데 가장 미흡한 부분은 바로 인권위원 인선에 관한 것이다. 현행 법제에서는 인권위원장 및 인권위원의 선임에 관한 어떤 실체적 자격기준도 제시되어 있지 않고, 또 절차에서 어떤 투명한 검증과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인권위의 인적 구성이 인권위의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요소라고 할 때, 이는 매우 심각한 결함이다. 인권위의 독립성은 단지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적 대표성과 책임성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연결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위 구성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국민들의 직접선출일 것이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직무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이 인권위원을 선출 또는 지명해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제5조 제1항에서 위원회의 구성은 "위원장 1인과 3인의 상임위원을 포함한 11인의 인권위원으로" 하고, 위원의 자격과 임명방법에 대해서는 제2항에서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국회가 선출하는 4인(상임위원 2인을 포함한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제3항), "위원 중 4인 이상은 여성으로 임명한다"고 규정하여 위원장을 포함한 11인의 위원 중 여성이 4인 이상이 임명되도록 하고 있다(제5항).
인권위 설립부터 2011년 11월 18일 현재까지 총 45명의 인권위원이 임명되어 활동했거나 활동 중에 있다. 이들 중 판사, 검사, 변호사, 법대 교수 출신의 법률전문가가 27명, 여성위원은 15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여성단체 등 NGO 출신, 언론인, 종교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5명의 위원장 모두가 법조인 출신이고,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반면, 12명 상임위원 중 법조인 출신은 3명에 불과하고, 여성은 7명으로 상당히 높은 구성비를 차지한다. 비상임위원 28명 중 법조인 출신은 19명이고, 종교인이 5명, 그 나머지를 여성단체 등 NGO 출신 2명, 기타 정치학교수, 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