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TPP 참여 표명 의도는

자유무역을 둘러싼 각축장이 돼 버린 동아시아

등록 2011.11.16 15:57수정 2011.11.16 15:57
0
원고료로 응원
호놀룰루 APEC에 참석하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대국민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를 국가의 제1목표로 삼고 있는 일본의 노다 정부가 미국과의 FTA를 큰 국가 목표로 설정했다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여야가 한미FTA를 비준해줄 것을 촉구했다. 어제는 국회를 방문해 여야 지도부와 회담하고 야당이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대해서 비준 후 3개월 내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당내 강경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민주당이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할지는 예단할 수 없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제안은 재협상이 아니라 개정협상이며 미국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호놀룰루 APEC 기간 동안 개별 한미 정상회담이 없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다른 정상들이 참가하는 정상회담 도중의 잠깐 동안의 만남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ISD의 재협상 문제에 언급했는지 알 수 없지만, 미 통상당국자가 <연합뉴스>에 대해 한미 FTA가 발효된 뒤 한미FTA 서비스·투자위원회에서 ISD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전달한 것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 미국 측에 한국 정부의 입장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그렇다면 어떤 논리에 입각해 어떤 입장을 전달했는지가 문제다. 야당의 반대로 한미FTA가 비준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ISD의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이해를 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많이 지적되어온 것처럼 ISD가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경제정책이나 산업정책을 상당한 정도로 제약할 수 있다는 점, 다른 말로 하면 ISD가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재협상을 해도 제대로 된 교섭을 할 수 없다.

이번 APEC을 계기로 동아시아가 자유무역을 둘러싼 각축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선명해졌다. 일본은 겉으로는 FTA에서 한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초조감을 내보이면서 APEC를 앞두고 TPP(환태평양경제연계협정) 교섭 참가 의사를 전격적으로 발표했지만, 뒤에는 동아시아가 국제적인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중국 중심의 위안화 경제권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11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은 TPP(환태평양경제연계협정) 교섭에 참가하고 있는 9개국 정상회담에서 TPP가 아시아태평양지역만이 아니라 미래의 무역협정의 잠재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을 배제한 사실상의 미일FTA인 TPP에 일본이 참가하겠다는 것은 미국이 가장 바라는 바였다.

11월 12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노다 총리는 TPP 교섭 참가를 향해 관계국과의 협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회담에서 노다 총리가 예외 없이 모든 물품과 서비스를 무역자유화 교섭 테이블에 올려놓겠다고 말했다고 미국 측이 발표하면서 양국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양국이 대화록을 공개하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노다 총리는 2010년 11월 각의에서 결정한 "포괄적 경제연계에 관한 기본방침"에 따라 "모든 물품을 자유화 교섭 대상으로 한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본방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하고 우리나라에 특히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는 EPA(경제연계협정)나 광역경제연계에 대해서는 민감한 품목에 대해서 배려를 하면서 모든 품목을 자유화 교섭 대상으로 하고 교섭을 통해 높은 수준의 경제연계를 목표로 한다. (강조는 필자)


기본방침에 방점을 둔 일본으로서는 (정상회담에서 언급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기본방침에 입각해 민감한 품목을 배려하면서 모든 품목을 대상으로 교섭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반면 (만약에 정상회담에서 "민감한 품목에 대해서 배려하면서"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본 측의 전향적인 태도로 이해한 미국 측이 발언 그대로 발표했을 수도 있지만, 미국은 일본이 어떤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예외 없는 자유화를 일본에 요구한다는 미국의 기본입장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미일FTA가 아닌 TPP를 선택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미일 간의 양자 교섭보다 다자 간 교섭이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전반기의 미일무역마찰이나 후반기의 미일구조협의(SII) 등을 통해 미국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양보해야 했던 학습효과가 컸을 것이다. 한미 FTA도 반면교사가 됐을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예외 없는 관세 철폐가 TPP의 원칙이지만 교섭 여하에 따라 예외 품목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FTA는 2005년에 발효되었지만,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보다 경쟁력이 약한 원당 등 300개 이상의 농산물에 대한 관세철폐 예외를 인정받았다. 미국은 TPP 발효 이후에도 이런 예외를 수정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미국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교섭 과정에서 일본도 예외 품목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며, 다른 국가와의 공조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이 교섭에 정식으로 참가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9개국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물은 미 의회의 승인절차다. 미 행정부가 일본과의 교섭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90일 전에 의회에 통보하고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일본은 내년 봄이 되어야 교섭에 참가할 수 있지만, 내년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만큼 TPP 9개국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2012년 내에 타결될지는 미지수다.

일본의 교섭 참가는 기존 9개국의 합의를 수용하는 것이 전제이지만, 그 내용에 따라 일본이 참가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5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노다 총리는 "관계국과 협의에 들어가는 것과 교섭참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국익을 훼손하면서까지 교섭에 참가하는 일은 없다. 협의가 잘 되도록 전력을 다하지만 국익을 명확하게 훼손할 때의 판단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TPP 교섭 참가를 향해 관계국과의 협의에 들어간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교섭 참가를 표명함으로써 현재 9개국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교섭의 내용을 파악하겠다는 것이 노다 총리의 의중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의 반발은 크지만 일본의 TPP 교섭 참가 표명이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으로 불편했던 미일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일본에 이어 캐나다와 멕시코가 참가 의사를 밝힌 상태에서 우리도 TPP의 교섭 상황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한일, 한중, 중일, 및 한중일 FTA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환태평양경제연계협정(TPP)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3. 3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4. 4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5. 5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