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가 24일 지지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남소연
병역 시비는 후안무치에 적반하장이었다. 병역 면탈을 위해 작은할아버지한테 '형제 기획 입양'을 보냈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었다. 당시 박원순은 코흘리개 13살(중1)이었다. 같은 방위병 출신인 홍준표 대표와 남편이 '육방'(6개월 방위)이었던 나경원 후보가 박원순에게 병역 공세를 편 것도 우습지만, 대통령부터 총리까지 줄줄이 군 면제자투성이인 '병역 부실 정권'에서 병역 시비를 거는 것부터가 한편의 코미디였다.
그러나 빚이 4억 원이면서 월세 250만 원에 강남의 50평대 아파트에 사는 강남좌파 박원순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한나라당의 '협찬 인생' 공세는 대중에게 먹혔다. 특히 박원순 후보가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조차 천만원대 등산장비를 K스포츠로부터 협찬 받은 사실이 공개되면서부터 중간지지층의 이탈이 시작되고 나경원 후보는 바싹 추격의 고비를 당겼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나 후보가 박 후보를 오차범위 안에서 근소하게 추월한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네거티브의 한계였다.
정당의 대변인은 '정치의 꽃'이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아 기피하기도 하지만, 아무나 하고 싶다고 되는 자리는 아니다. 이른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자리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두 젊은 시절에 야당 대변인을 하면서 대중 정치인으로서 주목을 받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나경원 후보가 대중 정치인으로서 지명도를 높인 계기도 2004년에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간 그가 2006년에 당 대변인으로 발탁된 데 이어,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선대위 대변인을 겸하게 되면서다. 그가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하고,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나가 두 차례나 3위로 지도부에 입성한 데도 대변인 시절에 쌓은 전국적 지명도가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무상급식 논쟁 때 즐겨 썼듯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정치인으로서 전국적 인지도를 속성으로 높인 만큼 자신이 쏟아낸 '말'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자리가 대변인이다. 그래서 대변인으로서도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의 한계 같은 것이 있다. 그 한계를 넘으면 아무리 '본변인'이 아닌 '대변인'일지라도 '천냥의 말빚'을 지게 돼 있다.
특히 낙향한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봉하 아방궁'으로 매도했던 이명박 정권이 편법 매입한 의혹을 받은 내곡동 사저 문제는 선거전 초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나 후보는 대변인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후 봉하마을 사저 건립에 대해 "서민들은 죽어가는데 대통령은 6억 원 대출받는 것이 제정신인가"라고 반문하며 "최소한의 도덕도 없는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일갈했다. 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비수처럼 꽂힌 그의 독설은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꼼수 매입' 논란 앞에서 부메랑이 되어 꽂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던 나경원의 호사 취미나 후보는 또 한나라당의 지지세력인 보수우파를 결집시키기 위해 노무현 정부에서 태극기를 제대로 걸지 않는다는 것까지 시비를 걸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공격했다. 24일 마지막 TV토론에서도 "박 후보가 2009년 '희망과 대안'이라는 단체 창립행사에 공동의장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태극기와 애국가 없는 행사를 진행했다"고 공세를 폈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제대로 걸지 않는 것이 대통령의 책임이고, 행사장에 태극기가 없는 것이 행사 참석자의 책임이라면, 이제 그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을 차례였다. '네거티브의 늪'에 빠진 '탤런트 정치인'의 한계였다.
이번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의 사생활과 관련돼 제기된 두 가지 의혹은 연회비가 1억 원인 강남의 피부클리닉에서 피부관리를 한 것과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700만 원으로 축소신고한 것이다. 나 후보는 500~600만 원 정도를 냈을 뿐이고 실제로는 10차례도 가지 않았고(K피부클리닉), 23년 전에 시어머니가 700만 원에 구입해 선물해준 것(다이아몬드 반지)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네거티브의 늪'에 빠진 뒤였다.
나 후보는 싯가 3천만 원(최고 1억원)인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가액을 축소신고했다는 야권의 공세에 "23년 전에 시어머니가 700만 원에 구입해 선물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나 후보의 지난 8년간(2004년~2011년) 공직자 재산등록 및 변동상황을 살펴보면, 나 후보는 비례대표 초선 때인 2004년부터 4년 동안 2캐럿 다이아몬드 반지의 가액을 공란으로 처리했다. 2004년에 신고한 재산은 약 19억원이었다.
그런데 나 후보가 문제의 다이아몬드 반지의 가액을 700만 원으로 신고한 것은 2008년 재선 의원이 되어 새로 40억 원으로 재산등록 신고를 할 때부터다. 2004~2007년 동안 0원이었던 반지의 평가액이 2008년에 700만 원으로 수직상승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축소신고 의혹은 네거티브 공세가 아니라 정당한 검증이었다.
공직자윤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재산의 가액은 재산등록기준일의 평가액으로 산정하되 평가액이 없거나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실거래가격으로 산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나 후보는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재산 축소신고와 관련 최소한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셈이다.
박원순 "나경원 후보는 이명박-오세훈의 아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