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로 분한 이순재. 수양대군의 기습을 받아 절명하기 직전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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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장군이 죽었다는데 사실이냐?""에이, 그딴 거 물으려고 이렇게 무섭게 장난치며 그렇습니까? 이 손 놓고 말씀 하시라요."잔뜩 긴장했던 그 녀석이 풀어진 느낌이다. 그 녀석은 장난같이 느껴졌지만 자원이에겐 심각한 문제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자원이가 목을 더 감아쥐었다.
"한양에서는 다 아는 사실인데 그게 무슨 큰 비밀이나 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빨리 말하지 않겠느냐?"자원이가 팔에 힘을 주며 다그쳤다.
"에혀! 장난 심하게 하다 진짜 사람 잡겠습니다."너스레를 떨며 엄살을 피우던 녀석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죽었습니다."순간, 자원이의 다리가 풀렸다.
"정말이냐?""네에."녀석이 이상스럽다는 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그냥 죽었느냐?""젊은 아이를 가까이 두고 계시던 분이 그냥 죽긴요."김종서는 70객 노인이었지만 젊은 처자 2명을 첩으로 두고 있었다.
"누가 죽였느냐?""수양대군이 죽였습니다.""어떻게 죽였느냐?""수하를 데리고 김종서 장군 집으로 쳐들어가 죽였습니다.""대호장군만 죽였느냐?""아들 승규도 함께 죽였습니다."자원이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또 죽인 사람은 없느냐?""황보인, 이양, 조극관을 불러들여 박살냈습니다." 정보가 차단되어 한양소식을 모르고 있던 지역 사령관이럴 수가 있는가? 도성의 변고를 모르고 있었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는 그 시절. 한성에서 벌어진 정변이 보름이 다 되도록 변방에 알려지지 않았다. 국경에서 벌어진 위급상황이라면 봉화를 올리고 매 30리마다 대기하고 있는 급주마를 띄워 한성에 알릴 수 있지만 아름답지 않은 정변 소식을 누가 그렇게 빨리 알리려 했겠는가. 더구나 함길도 길주에는 체포의 대상 이징옥이 있으니 정보를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 만약 입을 뻥긋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테니까.""알았시유."자원이가 목을 풀어 주었다. 녀석이 뒤돌아보았다.
"에이 장난도 심하셔, 증말. 진짜 사람 죽이는 줄 알았습니다.""약속 잊지 말아라.""내가 그 소리를 떠벌리면 나만 바보 되는데 내가 왜 그런 바부탱이 짓을 하겠습니까?"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녀석은 대열에 합류했고 자원이는 아버지 곁에 바짝 붙었다.
"대호장군님을 수양이 죽였답니다.""뭐라?"이징옥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다.
"정말이냐?""네, 아버님!""김종서 장군이 죽었다니..."믿고 싶지 않았다. 이징옥은 다리가 풀려 주저 않을 것만 같았다. 허나, 여기에서 동요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는 곧 냉정을 되찾았다. 부관 박문헌을 불러 뒤따라오는 송취를 불러오게 했다.
"내가 한성에 가지고 갈 선물을 깜빡 잊고 왔는데 되돌아가야 할 것 같소.""잊으신 것이 있다면 부관을 보내면 될 일이지 되돌아 갈 일이야 없지를 않습니까?""내가 직접 갈 일이오.""사적인 일이라면 아드님을 보내시지요."이징옥을 압령하라는 특명을 받고 한성에서 길주까지 온 송취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임무 달성을 위해 자꾸 제동을 걸었다.
"이놈들을 여기에서부터 쓸어버려?"이징옥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과 그의 아들 셋. 그리고 부관이라면 송취와 그의 졸개 10여 명 쯤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길주에서의 일이 어긋날 수 있다.
"되돌아갔다 오느라 하루를 버린다면 그만큼 빨리 달리면 될 게 아니오. 내 말은 천리마 이니 걱정하지 마오."이징옥이 발길을 돌렸다.
"함흥을 벗어나 체포하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여기에서 덮쳐?"잠시 망설이던 송취가 고민에 빠졌다. 긴급작전에 들어가면 무력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수적으로는 우세하지만 이곳은 이징옥의 텃밭 함길도가 아닌가. 승산이 없다. 송취가 체포를 순순히 접었다. 다함께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