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당시 중죄인은 손발이 묶이거나 족쇄를 차고 있었다. 사진은 옛모습을 재현한 낙안읍성 옥이다
이정근
장계를 받은 수양은 이징옥의 형 이징석과 그의 아들 이팔동을 의금부에 하옥하라 명했다. 연좌로 엮어 처형하기 위한 수순이다.
"수양이 나와 아들을 참에 처하는 것은 물론 삼족을 멸할 터인데 이 일을 어찌하나."금옥(禁獄)에 갇힌 이징석이 하늘을 보고 탄식했다. 거사 전, 명례궁까지 찾아가 추파를 던졌는데 그도 약발이 떨어졌나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이징옥. 한 때는 자랑스러운 동생이었다. 무예가 출중한 세 아들을 낳아준 아버지 전생(全生)이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헌데 이제는 동생이 밉고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한탄해본들 소용이 없다.
"안돼, 안돼! 탐관오리라는 악명을 들으며 모은 재산이 아까워서라도 난 죽을 수 없어."6진을 개척한 김종서 장군 휘하에 이징옥이 있다면 4군을 개척한 최윤덕 장군 아래에는 이징석이 있었다. 최윤덕은 압록강 유역을 평정한 공으로 무신으로서는 드물게 우의정과 좌의정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 때 최윤덕이 조정의 법도를 깰 수 없다며 정승 감투를 사양했다. 하지만 세종은 '공(功)에 문무가 따로 없다'며 최윤덕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징석은 최윤덕의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 3천1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파저강에 침입한 야인을 평정한 공으로 중추원사에 올랐다. 수직 상승이다. 욕심이 많은 그는 좌군동지총제, 우도병마도절제사, 중군동지총제, 경상도병마도절제사, 좌군총제 등 군 요직을 거치는 동안 재물에 탐닉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몰락은 모면했다. 하지만 이제 죽음의 문턱에 와있는 것이다.
"살려만 주면 결초보은하겠다. 죽이지만 않는다면 신명을 다 바쳐 충성하겠다."입술을 깨물며 스스로 다짐해 보지만 전할 방업이 없다. 옥사장 송맹금이 예전 중군 동지총제할 때 데리고 있던 수하였지만 역적 혐의로 엮이게 되니까 본 척도 안한다. 안면 몰수다. 올라가면 끌어내리고 엎어지면 밟아 버리는 게 세상사. 인간이 원망스러웠지만 세상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차가운 금옥에서 가슴을 쥐어뜯었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보내지? 밀지를 내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보낸다?"오직 믿는 건 한명회뿐, 허나, 일개 참모에 불과한 그가 화살 맞은 호랑이처럼 날뛰는 수양 앞에 얼마나 말 빨이 먹혀들어갈지 의아스럽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 방법은 그거야."방법은 하나, 옥졸을 매수하는 수밖에 없다. 몸에 지니고 있던 금붙이를 두둑이 내놓았다. 눈이 뒤집힌 옥졸이 남이 볼세라 얼른 금붙이를 궤춤에 집어넣었다. 이징석이 밀지를 옥 밖으로 내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늘이 무너저도 솟아날 구멍이 있을까?이징석을 하옥한 수양은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좌찬성 이사철, 좌참찬 이계린, 병조판서 이계전, 참판 박중손, 도승지 최항, 우승지 신숙주를 대군청으로 불렀다. 한명회는 당연 참석이다. 숙의를 마친 수양이 함길도 관찰사 성봉조에게 임금의 명으로 하교했다.
"계본(啓本)을 보니 경의 조치가 타당하다. 이징옥은 역적 김종서의 당으로 엄정하게 처치해야 마땅하나 여러 조(朝)를 섬긴 노신(老臣)인 것을 어여삐 여겨 목숨을 보존하여 원방에 유배하려 했는데 명령을 거역하고 신임 장수를 해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다. 경은 역적을 잡아 죽이라. 만일 역적에 부동(符同)하여 명령을 거역하면 이징옥과 죄가 같은 것이니 내가 반드시 용서하지 않겠다."줄서기를 확실히 하고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엄중 경고다.
병조에 '박호문의 아들 박철손에게 역마를 주어 급히 길주로 내려 보내라' 명한 수양은 강원도와 함길도, 경기도의 경흥대로 각 역(驛)에 상등마를 상시 세워 두고 전령이 지체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 지시했다. 이어 평안도 관찰사 기건에게 유시했다.
"이징옥이 신임 도절제사 박호문을 살해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함길도에 유시하여 잡아 죽이게 하였으나 평안도는 함길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어 염려된다. 경이 이 뜻을 잘 알아서 조치하라. 양덕과 맹산에 방비를 철저히 하여 이징옥이 경내로 들어오면 곧 잡아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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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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