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표지석
이정근
이들의 고향은 강 건너 검단산 아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나무꾼 노릇을 하던 그들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중간상인에 넘겼다. 흥인문 밖 나무전에서 팔리는 시세의 3분지 1이었다.
이 셈법에 심통이 난 이들은 직접 나무를 지고 암사동까지 걸어와 광진 나루를 건너 흥인문에서 팔았다. 허나, 팔리면 두둑한 돈을 손에 쥐었지만 땅거미가 지도록 팔리지 않으면 나무전에 넘겨야 했다. 그럴 때 그들의 손에 남는 것은 검단산에서 받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그들은 품질이라 생각했다. 잘 다듬어진 땔감을 가지고 오면 좋은 값에 빨리 팔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그 후, 좋은 나무를 때깔 좋게 꾸려가지고 온 이들의 나무는 나무시장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들의 나무는 점점 인기 있어 정승판서댁에서 선호하는 땔감이 되었다. 나무가 팔리면 대갓집에 배달해주던 이들 중 을석이는 황보인의 가동(家僮)으로 들어가고 계수는 권람의 하인으로 들어갔다. 붙임성이 없는 막둥이만 홀로 처져 신발 만드는 장인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다 신발 짓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너의 주인은 영상이라는데 영상이면 높은 사람이냐?"계수가 을석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인지하만인지상이라고 하더라.""그게 무슨 말인데?"계수가 을석이를 노려보았다.
"이런 무식한 놈들 같으니라구. 한 사람에게만 밑이고 다 위라는 뜻 아니냐?"막둥이가 신발을 뒤집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높은 사람이라 쳐주고 너의 주인은 요즘 뭐하냐?"계수가 을석이 가까이 다가 앉았다.
"우리 주인이 김 정승을 비롯한 여러 재상과 모여서 의논하는 것을 엿들었는데 '임금을 폐하고 안평대군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한다'고 하더라. 임금은 나랏님인데 폐하고 세울 수 있는 것이냐?"을석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껌벅거렸다.
임금은 나랏님인데 어떻게 쫓아내냐"임금도 잘못하면 쫓아내야지."계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임금님은 나랏님이고 왕비마마는 국몬데 어떻게 쫓아낼 수 있냐? 그럼 아버지가 잘못해도 쫓아내냐?"막둥이가 사뭇 진지해졌다.
"안평대군이 우리 주인에게 '어떤 방법으로 군사를 동원할 수 있겠는가?'하고 물으니 우리 주인이 말하기를 '첫째는 임금이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할 날이 가까워오니까 수리하는 일이 늦었다고 아뢰어 환궁을 지체시키고 둘째는 이명민으로 하여금 군사 수천을 대기하라 이르고 셋째는 황해도와 충청도 군사를 배로 싣고 와서 마포나루에 대면 대군께서 새벽을 타서 거느리고 들어와 이명민과 합세하면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더라.""정말?"계수와 막둥이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기감에 있는 병장기는 윤처공과 조번이 안평대군 집으로 운반하기로 하더라.""정말?"놀라움의 연속이다.
"거사는 언제 한데?"계수와 막둥이가 얼굴을 계수 턱밑으로 바짝 밀어 넣었다.
"열이틀이 좋을까? 스무이틀이 좋을까? 궁리하더니만 열이틀로 정하던데.""정말?"계수와 막둥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무지렁이라 하지만 군사를 동원하여 창덕궁으로 쳐들어간다니 오금이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