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정사.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번다했던 영화는 어디가고 쇠락한 집만 덩그맣게 남아있다.
이정근
"나는 속된 세상을 좋아하지 않고 조용한 산수를 좋아하여 이렇게 깊은 산속에 우거를 마련했소이다."안평대군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잘 다듬어진 안평의 수염은 선비들이 부러워하는 명품 수염이다.
"우거라니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누구인지 모를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살집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집치고는 꽤 크다. 정면 5칸에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곁들여 1500여 평의 강무장이 마련되어 있다. 산속에 있는 집에 무사들 훈련장이 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집이오. 쉬고 싶을 때, 한잔 술이 생각 날 때, 시 한 수 읊고 싶을 때, 주저 없이 찾아 주시오. 이렇게 좋은 여러분들의 사랑방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요?"
안평이 좌중을 사로잡았다. 용모도 빼어나지만 언변도 보통 수준이 아니다.
"옳은 말씀입니다.""지당하신 말씀입니다."여기저기서 긍정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공부정 이리 나오시게."이명민이 앞으로 나왔다. 선공부정(繕工副正)은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과 4대문, 4소문을 중수하는 책임자다.
"이 부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창덕궁 중수에 여념이 없을 텐데 이 집을 지어주고 마포강가에 별장을 지어준 고마운 사람이오. 내가 치하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오."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분과 민신에게 아부하여 선공부정에 오른 이명민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김종서와 안평에게 줄을 섰다. 창덕궁 중수용 목재와 석재를 빼돌려 김종서 집을 수리해주고 고급자재와 장인을 빼돌려 마포강가에 안평의 별장 담당정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무계정사도 깔끔하게 지어 낙성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창덕궁을 중수한다는 명분으로 금군 300명을 차출하여 세도가들의 집에 사역시키다 병조판서 정인지의 질책을 받았으나 오히려 세력가들의 힘을 빌려 정인지가 병조판서에서 물러나게 한 장본인이다.